[이기명 칼럼] 나쁜언론, 나쁜기자
[이기명 칼럼] 나쁜언론, 나쁜기자
  •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 승인 2021.11.18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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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만이 희망이다

오래된 얘기지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이다. 추석이 왔고 나는 봉투를 마련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으로 늘 고마웠던 후배 기자들에게 송편값이라도 주려고 했다.

용인 땅이 수용되고 보상금이 나와 여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드라마도 안 쓴 내게 무슨 돈이 있으랴. 봉투에다 이른바 촌지를 조금씩 넣었다.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기자들이다. 기자들이 놀랐지만 나를 아는 자식 같은 애들이라 그냥 고맙다고 받았다. 다음날 한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새내기 올챙이었다.

‘선생님. 정말 고마운데요. 다음에 선생님을 뵐 때 마다 봉투생각이 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수줍게 봉투를 내밀었다. 순간 내 얼굴이 벌게졌다. 아 저렇게 깊은 생각을 했구나. 그는 지금 환갑이 지났다. 편집국장도 지냈다. 지금도 봉투를 내밀던 그를 잊지 못한다. 존경하는 기자 상위다.

■애걔. 요거야.

ⓒ광주인 자료사진
ⓒ광주인 자료사진

공개된 얘기다. 공영방송 아무개 체육 담당 기자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 속에서 촌지를 꺼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

‘애개. 요거야.’ 지폐 몇 장을 흔들었다. 모두 웃었다.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도 않았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나쁜 기자다.

지금처럼 주머니에 들어가는 녹음기는 없었고 무거운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새마을운동이 서슬 퍼렇던 시절, 도지사는 대령급이고 군수는 소령·대위들이다. 새마을운동 한답시고 재래식 화장실에 화분을 놓던 때다. 형식적인 취재일 수밖에 없다.

저녁 식사는 떡 벌어졌다. 잠자리도 좋은 여관이다. 편히 쉬라는 말과 함께 건네는 두툼한 봉투. 그들이 나간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 온 여성. 고개만 숙이고 있다. 의미를 안다.

난 받은 봉투를 꺼내 여성에게 건네고 집에 가라고 했다. 머뭇거리던 여성이 나갔다.

새마을 취재를 다녀오면 할 일이 많다. 당시 사무관 월급이 쌀 몇 말 값밖에 안 된다. 이걸로 먹고 살아야 했으니 도둑질해 먹어도 할 말이 없다. 나도 손가락 빨고 살 수는 없다.

더구나 회사에는 나를 기다리는 높은 사람들이 있다. 모두 도둑이다. 고백한다. 나는 나쁜 놈이었다.

■좋은 출입처

좋은 언론사가 있고 나쁜 언론사가 있다고 했다. 좋은 출입처가 있고 나쁜 출입처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모르지만, 과거에는 나도 그 얘기를 믿었다.

올챙이 기자가 어느 출입처에 나간다고 하면 ‘너 좋은 데 나가는구나’하고 대견해했다. 좋은 출입처는 무슨 의미일까. 기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유당 시절, 동아일보는 언론지망생들의 선망이었다. 국민의 희망이었다. 당시 광화문 동아일보 건너 국제극장 뒤 판자 대폿집에서 저녁이면 동아일보 기자들이 대폿잔을 기울였다.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취기 어린 말들은 젊은이들의 희망이었다. 자유당 정권엔 눈엣가시 같았던 기자들이 언론운동을 펼쳤고 독재정권은 광고 중단이라는 ‘광고탄압사태’를 일으켰다. 동아일보에는 백지광고가 쏟아졌다.

백지광고를 낸 어느 초급장교는 수사를 받았다. 급기야 기자들은 개처럼 끌려나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언론이 갈가리 찢기는 현장을 목격했던 나는 지금 동아일보를 보며 가슴이 아프다. 기레기를 생각한다.

들불처럼 번지던 언론운동은 불에 타는 서울신문 건물 같았다. KBS 사원들은 민주광장에서 언론자유를 외쳤다. KBS를 울리던 북과 장구, 꽹과리 소리를 들으며 이제 언론자유가 왔다고 환호했다.

누가 언론자유라 했던가

재미있는 세상이다. 지금 언론사 간부들은 노조 때문에 못해 먹겠다고 한다. 노조는 간부들의 곰팡이 머리가 문제라고 한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든 문제는 있는 것이다. 언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해결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 분명히 말한다. 언론이 중요하다.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왜 제일 먼저 방송국을 점령하는가. 왜 신문을 장악하는가. 5·16 군사정변 당시 나는 6관구사령부의 말년 병장이었다.

한밤중 잠을 자다가 뭔지도 모르고 칼빈총 메고 트럭에 실려 남산 KBS에 투입됐다. 기관단총을 멘 똥별들이 살벌했다.

이른바 혁명군이었고 이들이 박정희군사정부 최고위원이 됐다. 원대복귀 한다던 그들은 얼마 후 정치 오물통으로 뛰어들었고 썩어갔다.

방송은 쿠데타군의 앵무새가 됐다. 전두환이 이끄는 육사생들의 쿠데타 지지 행진과 임택근의 지지 중계방송이 크게 기여했다.

역시 언론의 힘이었다. 박정희·전두환의 앵무새. 언론의 숙명이었다. 한국 언론이 겪은 기구한 팔자.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론이 나라를 살리고 죽인다.

■언론과 검찰

국민이 묻는다. ‘이 나라가 검찰공화국이냐?’ 무슨 소리냐.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다시 묻는다. ‘이 나라는 언론공화국이냐’. 무슨 소리냐. 이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 나라 현실을 보면서 짙은 회의감에 젖는다. 언론은 국민의 눈이며 귀며 입이다. 언론이 없으면 국민은 살아 있는 송장이 아니고 무엇이냐.

진실을 전한다는 언론을 보며 진실을 아는 국민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기사를 생산해 내는 기자에게 진실을 물어도 확신이 없다. 국민이 무슨 진실을 알 수 있는가.

거짓 세상에서 놀아야 하는 국민이 더없이 가엾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인가.

조선일보가 생산해 내는 휴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신문 생산공장이 아니라 휴지 생산공장인가. 휴지를 생산하고 있는 기자들이 가엾다.

기자들은 자기가 쓴 기사에 자신이 없다. 기자마다 출입처가 있다. 요즘 깃발을 날리는 기자가 법조출입 기자란다. 무슨 이유일까.

꺼리가 많기 때문이다. 꺼리를 주지 않으면 기사를 쓸 수 없다. 검사의 입을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검사도 출입기자도 실세다.

국민은 믿는가. 검사를 믿는가. 믿어야 한다. 그들은 그 힘든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선서’를 했다. 검사 선서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오늘(17일) 한겨레 김경욱 법조팀장의 글을 읽고 새삼 느낀 바가 컸다.

[검사 선서]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들은 누구나 검사 선서를 할 것이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국민이 검사 선서를 얼마나 믿느냐는 것이다. 믿느냐. 할 말이 없다.

기자들에게는 윤리강령이 있다. 소개할 필요도 없이 잘 알 것이다. 기자가 썩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과거 많은 글을 쓰면서 잘못 한 것은 죽어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 많은 욕을 먹으면서 80이 넘어 글을 쓰는 것은 속죄의 또 다른 방법이다. 죽는 날까지 속죄를 할 것이다.

‘검·언·판’이라고 한다. 검사와 언론과 판사를 말하는 것이다. 판사는 잘 모르지만, 검사와 기자는 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검사와 기자들이 나라를 쥐고 흔든다.

정상이 아니다. 다시 검찰국가, 기레기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방관할 것인가. 기가 막힌다. 결코,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다.

내 나이 내일 모래면 90이다. 당장 죽어도 아쉽지 않을 나이다.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는가. 악착같이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고 얼마 남아 있지도 않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뭘 그렇게 안달을 하면서 나라 걱정을 하느냐. 속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 되는 걸 어쩌는가.

이 글을 쓰면서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 요즘 더욱 그렇다.

‘언론이 죽으면 나라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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