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박형규 설치 조각가

   
  ▲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박형규 작가  

반짝반짝 손톱깎이가 새가 되고 개구리가 된다. 그의 손길을 거치면 차가운 쇠붙이가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한다. 또래 작가들 사이에서 일명 쓰메키리 작가라고 불리는 박형규씨(32). 그의 작업실에는 뜯겨진 전자제품이 널려있다. 작업책상 위에도 부품들이 무장해제된 채 나뒹군다. 이런 낱낱의 부속품은 그의 섬세한 손길과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된다.

박형규씨는 무척 과묵하고 진중하다. 질문을 하면 한동안 답변을 고민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그만큼 신중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한참이라고 생각한 것은 성질 급한 내 시간에 의한 착각일 뿐, 사실은 잠깐일 텐데도 그 순간이 근질근질하다.

조선대학교 조소과 94학번인 박형규 작가는 동기 가운데 유일한 전업 작가이다. 때문에 다른 할 것이 없어서 여태까지 혼자 남아 작업하는 것이 아닌가 가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는 그는 그러나 서른 살이 되기 전 첫 초대전을 연 촉망받는 작가이다.

지역 유능작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한 작가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심사위원들에게 “독특한 조형성과 개념을 갖는다”, “섬세하고 치밀한 작품은 유희성이 돋보인다”, “쓰다 버린 폐품이 유희적 조각으로 변신하면서 작가 뿐 아니라 감상자를 즐겁게 만든다”는 평을 들었다.

오는 5월 우제길 미술관에서 세 번째 초대전을 갖는 박 작가는 “제 돈 들여서 전시회 하는 것은 탐탁지 않습니다.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서입니다. 돈이 들어가는 만큼 기대와 요구도 늘어나는 게 싫거든요. 제 작품의 소재가 작고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하는 까닭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거대한 조각에 투자되는 비용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라며 싱긋 웃는다.

   
 

고2까지 아버지 몰래 화실을 다녔다는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장난감을 많이 갖고 놀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 큰 지금 장난감을 만지며 어려서 채우지 못한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들지요”라며 쑥스러워했다.

그의 일관된 모토는 행복이다. 작업도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대학 2학년 때 설치미술 수업시간에 제작했던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우들의 작품 주제는 죽음과 같은 어두운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는데, 교수님이 보시고 너희가 죽음을 아느냐. 왜 이렇게 겉늙었느냐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이 충격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어요. 부끄러웠지요. 내 것이 아닌데 마치 내 것인 양,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표현한 작품에 대해 처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박 작가는 “제 작품은 고민한 흔적이 없어 보이지 않나요? 별 고민 없이 작업합니다. 팔다리를 붙이니까 개구리가 돼서 손톱깎이 시리즈도 시작된 것입니다. 재미있으라고 한 거니까 관람객들도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30여년 살아오면서 큰 시련을 겪은 것도 아니고, 5.18을 겪은 세대도 아니어서 평소 지향한 삶, 행복한 삶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라며 재미를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 “아무래도 5.18을 경험한 세대는 그림을 보는 순간 투쟁이 느껴지는데 우리 세대는 감은 오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지요. 저는 또 개인전이라고 하지 않고 ‘끝없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예술은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5월에 하게 될 전시는 그래서 끝없는 여행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인위적인 제 작품과 자연물과의 공존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인다.

박 작가는 작품과 관련된 단상을 직접 쓴다. “작품사진 하나 주며 평론을 부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와 직접 만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써야지요. 그럴 바에는 제가 쓰지요.” 박 작가는 이외수의 글을 좋아한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 대부분이어서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지원에 대한 생각을 묻자 “힘들면 안하면 됩니다. 행복하려고 하는데 힘들면 안해야 되지 않을까요? 자기 작품세계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서 불만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라며 명쾌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왜?”라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무심히 대답할 것만 같은 그와의 만남은 여기에서 끝났다. 하지만 “그냥”이라는 대답 속에 사실은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우리가 깨닫지 못한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그의 작업실 한 편에 숨어있던 그의 단상을 소개한다. 직접 썼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그의 고민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그의 ‘끝없는 여행’에 동참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난 바보다. 그래서 계속 그림을 한다. 중학교 미술선생님에 대한 환상도 깨지고 작가라는 환상도 깨지고 갈수록 깨지는 그릇들만 늘어나는데 그냥 바보처럼 그림을 그린다. 라디오 부품이 필요했다. 고물상에 갔다. 주인아저씨 이래저래 훑어보고 이야기 듣고 선심 쓰듯이 고장난 미니 카세트 1대 만 오천원이란다. 고맙습니다. 넙죽 6대를 사서 돌아왔다. 나는 바보다.
……
취미라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고 다니는 내 미술은 취미이다. 직업은 경제적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에 나는 그림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좋은 전시회보다는 재밌는 영화가 좋고, 좋은 그림보다는 만화가 좋고 대중가요가 좋다.
……
미술도 재미있는 작품이 좋다. 작품 앞에서 관객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고민하고 떠나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 아니라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어야 할 의무감을 주지 않는 가벼운 재밌는 작품이 좋다. 유희라고 하더라. 아무 목적없는 순수한 즐거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 그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는 순수성, 머리가 아닌 시각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그리고 아무런 이익없는 쾌락, 어쩌면 한 시대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그 무엇들과는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지금 여기서 그림을 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면 비굴해질 필요가 없고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나는 바보가 될 것이다. 미술을 통해 말할 줄 모르고 미술을 통해 돈 벌 줄도 모르고 미술을 통해 다른 것을 얻어낼 줄 모르는 바보가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하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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