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방자치도 마찬가지이다. 자치분권 5법도 부족하나마 현하 제 정치세력들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전국의 자치분권을 염원하는 제 단체와 세력들이 각종 성명서 및 결의문 채택으로 정부와 국회에 의견을 개진하였고, 때로는 1인 시위도 마다하지 않으며 힘을 쏟았다. 그런 물심양면의 힘과 지혜가 모여 자치분권 5법의 제도화가 마침내 완성되었다.

ⓒ광주인 자료사진
ⓒ광주인 자료사진

20대 국회 말미에 가까스로 통과된 제1차 ‘지방일괄이양법’과 21대 국회 들어 여대야소라는 변화된 의회 환경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32년만의 ‘자방자치법 전부개정안’,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줄기차게 거론되어 온 자치경찰제 전면시행을 담고 있는 ‘경찰법개정안’, 그리고 대통령이 주재하고 총리·중앙부처장관과 광역시도지사가 참석하는 중앙지방협력회의의 설치를 담고있는 ‘중앙지방협력회의법’이 지난 6월 통과되었다.

또 지방의 열악한 재정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고향사랑기부금법’이 15년여의 여야 협의 끝에 지난 9월 가까스로 국회문턱을 넘었는데 이들 5개 법률이 자치분권 5법이다.

문재인정부 초반 연방제수준의 자치분권을 달성하겠다는 기치로 내놓았던 대통령 발의 지방분권형 개헌안이 국회의 협력을 얻지 못하자, 하위 법령의 개정을 통해서라도 제도화의 취지를 달성하고자 했던 절치부심의 성과물이 바로 자치분권 5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방자치제도도 민주화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87년 6월항쟁으로 한국민주주의의 절차적 제도화가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던 즈음, 지방자치제도 역시 6월항쟁 당시 거리에 나온 국민들의 주요 슬로건 중 하나이었고, 마침내 6.29선언에 명기될 수 있었다.

그 직후 여야가 합의로 만든 헌법개정안에 담기게 되고, 5.16 군사정권의 임시조치로 강제 폐지된 이후 30년만의 지방자치법개정안에 구체화되게 된다. 그러나 제도의 시행은 한참을 더 기다려 김대중 대통령의 단식투쟁 이후에야 91년 지방의회 구성,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출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87년 헌법과 88년 지방자치법은 사회적 변화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개정작업을 단 한 번도 거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치분권 5법의 제도화가 완성되었다. 지방자치 부활 30여년 만에 새로운 환경이 펼쳐진 것이다.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의 실질적 자치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도 있고, 자치분권 2.0시대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의미 부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고 규범인 헌법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조례 제정권이 헌법에 법률유보 사항으로 명기되어 있는 한 자치입법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지방자치단체가 헌법상의 용어인 상황에서 지방정부라는 명칭은 법적 용어가 될 수 없다.

지방자치를 실시한지 벌써 30년이 되었지만, 우리의 지방자치가 이직도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지방의 자치권이 보장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지방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일부 자율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중앙정부의 정책적 결정과 지시를 이행하는 대리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목적이 정해진 정부보조금이 아닌 자주재원(지방세, 세외수입 등)에 대해서만 자유롭게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자주재원은 충분치 못하다. 지방에 돈이 없다보니 지방공무원의 급여마저도 중앙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가 예산편성기준을 제시하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이상걸 자치분권위원회 소통협력담당관.
이상걸 자치분권위원회 소통협력담당관.

따라서 자치분권 5법이 실질적인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치분권형 개헌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한다. 그 개헌안에 대한민국이 자치분권국가임이 천명되고, 지방자치단체라는 반관반민의 용어가 아닌 ‘지방정부’로 불리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입법권이 국회에 보장되는 것처럼 지방의 자치입법권이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에 보장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세의 자주권이 확보되어 지방의 자주재원이 확충되고 자주재정능력이 신장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의 대표자로 구성된 상원이 헌법에 보장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사항은 상원에서 실질적으로 협의될 수 있게 될 것이고, 자치권이 부당하게 침해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입법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중앙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해진다.

또 하나 자치분권의 실질화를 위해서는 지역의 행위주체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지방의회 의원들과 집행부의 공무원, 그리고 지방자치의 주인인 지역 주민들이 우리 마을 우리 동네의 일은 내가 참여하여 설계하고, 감시하고, 내 삶을 바꿀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간다는 주권자로서의 의식에 투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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