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심 지하철의 노동 환경과 구조를 조망하는 김정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연일 해가 뜨고 지며 네온사인과 불빛으로 밤낮을 밝히는 지상과 대비되는 지하에는 누가 자리하고 있을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곳을 일터로 삼으며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김정근 감독의 신작 <언더그라운드>는 도심을 가로지르며 하루에도 수많은 인파가 들락날락하는 지하철과 관련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 카메라를 가까이한다. 

감독은 주로 부산 지역에서 노동 의제에 관하여 꾸준히 작업해왔다. 특히 한진 중공업을 둘러싼 문제들이 핵심이었다. <버스를 꾸준히 타라>(2012)는 당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던 희망버스 운동 현장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았다.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그림자들의 섬>(2016)에서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인생사와 투쟁사를 교직해가며, 그들의 일대기를 심도 있게 조명한 바 있다. <언더그라운드>의 배경도 부산이다. 이번에는 부산 도심의 지하철을 가꿔나가는 사람들,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인공들이다.

차고지에서 열차 정비를 담당하는 사람들, 머지않아 그러한 현장에서 일하게 될 것을 기약하는 공업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 새벽녘에 나와 열차 운행을 시작하는 철도 기관사, 지하철 역사의 청소 노동자들, 철로와 스크린도어를 유지·보수하는 자들, 그리고 열차의 운행과 역사를 관리하는 역무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편 전작 <그림자들의 섬>(2016)은 한진중공업 투쟁사를 둘러싼 거대한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술회하듯 펼쳐보이며 현장 투쟁의 역사를 따라가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취했던 작업이었다. 이와 달리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이라는 환경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을 담으면서도, 이들을 유기적으로 묶어 연쇄해내기보다는 각기 흩어져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노동자들의 일상을 폭넓게 조감한다.

또한 자신을 철도 덕후라 칭하며 열차가 어떻게 순환하고 반복되는가를 보이려 했다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말처럼, 영화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으로 수렴하는 일상에 관한 스케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언더그라운드>는 보다 구조 안에 놓인 현실을 조망하는 작업에 가깝다.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그런 점에서 전작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사회적 운동으로서 연대라는 구심점을 제시했던 것에 반해, 부산 도심의 지하철이라는 장소 안에서 각자 일과 삶을 영위해나가는 자들을 망라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같다.

특히 전작에서는 노동자들의 쟁의 현장과 투쟁 환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언더그라운드>에서도 무인매표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던 사람들이 투쟁했던 이야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영상 푸티지나 시청각 자료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보다는 그들의 구술을 통해 스쳐가듯 언급된다.

그렇기에 즉흥적으로 경험담을 털어놓던 인물들이 뿜어내던 생동감이 종종 화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이 자리했던 전작과 달리, 감독의 구상으로 통제된 구성에 인물들이 포섭되는 쪽에 가깝다. 사운드에 입각해서 보자면 <언더그라운드>는 연대와 투쟁이라는 구호로부터 촉발된 투쟁가들의 육성에 깃든 슬픔, 환희 같은 감정들이 부각되는 영화라기보다는, 세심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조성된 파열음, 소음들에 관한 작품이 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이목을 끄는 점은 극중에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개개인 한명 한명의 이야기로부터 서사를 이끌어내어 논점을 대담하게 확장하기보다는, 이미 직면해있거나 혹은 앞으로 마주해야 할 구조 안의 현실에 인물들을 수렴시키는 방식과도 맞닿아있을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이는 사회(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해야만 하는 개인들을 구조 안에서 포착하는 방법에 적합하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선택은 일정 부분 양면성을 띄게 되는 것 같다. 구조 자체를 담아내는데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개인과 구조 사이에 놓인 여러 쟁점들에 관하여 한층 뻗어나갈 수 있는 지점 어딘가에서 멈칫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를 영화의 지향점으로 볼 수는 있다. <언더그라운드>는 노동 및 고용 유연화라는 구실로 특수, 파견, 외주화, 정규직/비정규직 등의 다양한 형태로 쪼개진채 일하는 군상을 통합해내기보다는, 병렬해나가는 작업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화가 논쟁을 촉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상기하게 된다. 돌아보면, 영화의 도입부에서 카메라에 처음 담기는 대상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그곳에서 몸 담게 될 특성화 공업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다.

<그림자들의 섬> 같은 다큐멘터리를 이끌어낸 주역들은 거시적인 목표와 대의로서의 운동을 연대라는 비전으로 제시했던 역사를 통과해왔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변혁이라는 목표를 집단적인 행동으로 일궈나가려 했던 시도들은 자본의 힘 앞에 속절없이 무력화되고 있다. 그리고 각자도생이라는 명목하에 공론장은 모조리 해체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구조적인 고통마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들고, 상호간의 신뢰를 좀처럼 쌓아올리지 못하는 세상에서 고립된 채로 자아를 형성하려 부단히 애쓰는 청년 세대의 문제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현장 견학을 온 학생이 이미 누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인지, 그리고 자신이 곧 이 같은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는 모습 또한 담아낸다.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종반부, 좁고 기다란 어둠의 터널 끝에서 밤새 수리하는 정비사들이 화면에 들어선다. 이 시대의 어떤 그림자들은 희미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춰야만 하는걸까. 지하철은 여러 명암이 엇갈리고, 교차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이곳은 무인화 같은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빠르게 변모하는 장소이기도, 여전히 열악하기 그지없는 방칸에서 취식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빛과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던 영화는 이내 막을 내리지만, 질문은 이어진다.

지상과 지하, 빛과 어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시화된 문제들과 가시화되지 못한 사안들 사이에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밀려나가야 하는 광경을 그저 망연히 관망만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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