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끼는 일상의 ‘구역질’

고등학교 시절, 무지하게 책을 읽었다. 미친 듯이 읽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 가지고 학교 도서관에 죽치고 앉았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진열된 소설책을 ‘여기서 저기까지’ 정해놓고 읽었다. 한국소설과 번역소설 가리지 않았다. 귀신에 씌었었나 보다.

한국소설에는 청소년 금서인 ‘여학생의 정조’도 있었다. 박계주의 ‘순애보’, 김래성의 ‘마인’ 등등. 그중에 끼어 있는 것이 사르트르의 ‘구토(Nausée. 嘔吐)’였다. 첫 장을 읽고 멍했다. 이게 도무지 무슨 소리지?

어렵다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고등학교 1년생이 펴 놓고 있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그러나 읽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읽는다는 약속으로 읽었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는 정말 ‘구토(嘔吐)’를 느꼈다.

■다시 느끼는 구토

연상 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6·25 때 시골 논두렁에서 꼴을 베던 나는 느닷없이 대가리를 바짝 들고 입을 벌린 독사를 보고 기절초풍했다. 다음부터는 독사가 연상되는 무늬의 생물이 싫다. 무척 싫은 것을 보면 난 구토를 느낀다. 요즘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수시로 구토와 고통을 느끼며 괴롭다.

내가 이재명 지사의 막말 욕설을 들으며 심한 구토를 느낀 것은 솔직한 고백이다. 그 연상 작용으로 이 지사의 말은 내게서 신뢰를 잃었다. 한국 정치인의 거짓말은 기네스북에 올려도 손색없을 정도다.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까지 쏟는 대는 사라 베르나르(황금의 목소리라 불리던 19세기 후반 프랑스 여배우) 같은 명배우도 저리 가라다. 정치인들은 눈물을 쏟으며 얼마나 속으로 웃을까.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슬픈 연기를 하며 돌아서 손을 떨 때 관객은 펑펑 울었다. 그러나 ‘베르나르’의 가려진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는 그냥 손을 떨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이 명연기자들인가. 웃기지 마라. 난 절대로 안 믿는다. 손이 아니라 발을 떨어도 안 믿는다.

나의 연상 작용은 수시로 구토를 불러온다. 토론 중에 이재명 지사가 슬쩍 눈을 치뜨며 상대를 보는 표정은 무척 모멸적이다. 저 표정 속에 얼마나 진실이 담겨 있는지 국민은 알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재명 지사는 모를 것이다. 아니 알고도 모른척할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

오슨 웰스(Orson Welles)나 찰스 로튼(Charles Laughton), 제임스 카그니(James Cagney) 같은 배우들은 다양한 얼굴로 유명하다. 이들은 얼굴이 많을수록 더 좋을 수 있다. 그럼 정치인은 어떤가. 한국의 정치인은 어떤가. 하나면 충분하다. 변하지 않는 진실한 얼굴 하나면 국민은 대만족이다.

생각나는 정치인이 없는가. 있지만 여기서 공개하지 않는다. 모두 알 테니까. 변신의 귀재라고 자부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제발 빨리 사라져 주었으면 고맙겠다.

글을 쓰기 조금 전에 방송에서 문제의 정치인이 보였다. ‘당신이 그때 한 발언에 대해서 지금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받자 그는 표정 하나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오해다. 잘못 안 것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잘못 알았다는 데 뭐라고 해야 하는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후보로 나온 정치지도자란 사람이 저렇게 멀쩡한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국민은 어째야 하는가. 국민이 지도자를 잘 골라야 한다.

■구토 좀 안 하고 살자. ‘정직한 대통령’

착하디착한 국민이라서 정치인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인가. 조금만 정신 차리고 들으면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금방 들통 난다. 실제로 이 지사의 말을 들으면 정말 곤혹스럽다. 모두가 자신이 편리한 대로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원래 거짓말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이 지사가 변호사 비용 관련해서 내놓은 설명은 분명한 법률위반이다. 30명의 변호사 비용이 1억여 원이란다. 세상에 싸구려 변호사도 다 있다. 이거 뇌물 아닌가.

과실치사죄를 저지른 사람이 공직의 장을 맡아다가 들통 나자 사표를 냈다. 왜 이러는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 살아 있다.

제발 국민으로 하여금 구토(嘔吐) 좀 느끼고 살지 않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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