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조사위, 무명열사 41년만에 이름 찾았다
5.18조사위, 무명열사 41년만에 이름 찾았다
  • 조지연 기자
  • 승인 2021.06.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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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조사위원회, 무명열사(묘4-90) 신원확인 조사결과 발표
5·18민주묘지 묘지번호 4-90번(무명열사)과 신동남과 일치

5.18민중항쟁 무명열사가 41년만에 자신의 이름과 가족을 찾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선태)는 5·18민중항쟁 당시 행방불명되었다고 신고된 신동남 유공자(1950. 6. 30.생)의 신원이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무명열사 묘지번호 4-90번 사망자와 동일한 것을 41년 만에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한 형을 41년만에 무명열사(묘지번호 4-90)에서 '신동만 5.18유공자'로 이름을 되찾은 고인의 동생 신아무개씨가 15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친형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광주인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한 형을 41년만에 무명열사(묘지번호 4-90)에서 '신동만 5.18유공자'로 이름을 되찾은 고인의 동생 신아무개씨가 15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친형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광주인

5.18조사위는 이날 오후 국립5.18민주묘지 국제세미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41년간 무명열사로 가족을 찾지 못했던 묘 40-9 신동남 유공자(당시 30세)에 대해 조사위가 5·18 부상자 실태조사, 광주적십자병원을 비롯한 각급 병원의 진료기록 및 진료비 청구서, 5·18 사망자 검시결과보고서,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타지원금지급신청서 및 기각결정서 등 기록과 문헌을 통해 가족과 일치된 관계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또 조사위는 주요 참고인 및 유가족들의 진술조사, 과학적인 유전자 검사를 통한 가족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업체의 분석 및 대조결과를 전남대 법의학교실에서 감수하여 신동남 5.18유공자의 가족을 찾았다고 밝혔다.

5.18조사위는 "6월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 중에 5기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무명열사’의 묘비로 안장되어 있다"며 "해당 5기의 사망자에 대해 행방불명자 우선 조사과제로 설정하고, 사망자 검시 기록과 당시 작성된 병원의 진료기록을 확인하여 행방불명 보상신청서 기록과 대조하여 그 대상을 특정했다"고 조사배경과 과정을 밝혔다. 

5.18당시 41년만에
5.18 당시 계엄군 총탄에 사망해 무명열사(묘 4-90)로 41년동안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 중에 5.18조사위원회가 행불자 추적조사를 통해 이름을 되찾은 신동만 유공자 묘비에 유족과 송선태 5.18조사위원장과 위원, 5.18단체 간부 등이 묵념하고 있다. ⓒ광주인

조사진행은 '5·18행불피해 보상신청자 전수조사 현황'을 정리하여 1980년 당시 광주에 소재했던 병원들의 진료기록과 진료비 청구서 및 진료비 청구 내역을 전수조사하여 신원미상 5기의 사망자검시결과보고서와 비교, 분석해 특정했다고 설명했다. 

조사과정에서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신원미상 5기의 사망자 검시서와 행방불명신고자 중에서 나이, 신체의 특징, 사망 일시 및 장소, 사망의 원인 등을 분석하고, 병원의 진료기록 중 사망자 관련 기록과 대조하여 최종적으로 행방불명피해신청을 했다가 1994년 2월 기각결정으로 불인정된 신동남과 5.18묘지 4-90번의 신원미상의 사망자가 일치할 가능성을 확인한 것.

신동남 유공자는 건축 미장노동자로 광주에서 3개월 가량 머물던 1980년 5월 20일께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광주역 근처 여인숙(이아무개, 김아무개 등과 동거)에서 나갔다가 불상의 장소에서 계엄군으로부터 총상을 당하여 광주적십자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는다.

다음날인 21일께 적십자병원의 간호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동거인 이아무개씨 등이 적십자병원으로 찾아가 수술 후 복부에 붕대가 감겨 있던 신동남을 확인한다.

41년만에
41년만에 무명열사에서 신동만 5.18유공자 이름을 되찾은 묘비 앞에 송선태 5.18조사위원장이 헌화하고 있다. ⓒ5.18조사위원회 제공

이아무개씨는 시위에 참가한 후 이날 오후에 다시 적십자병원을 찾아 신동남과 30여 분 같이 있다가 다시 나와 시위에 참여하였고, 다음날 병원을 들렀으나, 신동남이 이미 사망하여 영안실로 옮겨져 다른 사망자들의 시신과 함께 눕혀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

이씨가 영안실을 찾았을 때 시신이 없어진 이유는 5.18 당시 5월 22일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서 시내 병원의 사망자들을 모두 도청으로 옮겨와 신원을 확인한 후 상무관에 안치하는 과정에서 신동남의 시신도 함께 적십자병원에서 도청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신원미상의 사망자(신동남)는 5·18민중항쟁 당시 구속된 관련자 이금영의 어머니에 의해 1980년 5월 24일께 상무관에 안치되어 있다가 5월 29일 망월시립공원묘지 제3묘원에 이금영의 이름으로 매장(당시 묘지번호 47번)되었다가 1980년 6월 21일께 이금영이 상무대에 연행되어 구금된 채 생존해 있음이 확인됨에 따라 위 사망자(신동남)는 신원미상으로 처리됐다는 것.

이후 2001~2002년 실시된 광주광역시의 ‘행방불명자 소재찾기 사업’으로 추진된 신원미상 11기의 유해에 대한 유전자 검사 과정에서도 위 신원미상의 사망자(신동남)는 다른 4기와 함께 유전자가 일치하는 가족이 없어 국립5·18민주묘지에 묘지번호 4-90번에 ‘무명열사’(신원미상)로 안장됐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으로부터 총상을 당한후 광주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을 기록한 병원 자료. 이 자료를 통해 41년만에 무명열사가 신동만 유공자로 이름을 찾고 유족을 만나게 됐다. ⓒ5.18조사위원회 제공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으로부터 총상을 당한후 광주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을 기록한 병원 자료. 이 자료를 통해 41년만에 무명열사가 신동만 유공자로 이름을 찾고 유족을 만나게 됐다. ⓒ5.18조사위원회 제공

5.18조사위는 신원미상 사망자의 광주사태변사체 검시보고(1980. 광주지방검찰청)에 기재된 부위 및 사인 부분에 '복부관통상 및 장파열'과 사체검안서의 '좌측 복부 및 중상복부에 사입구로 인정되는 총상과 정중선을 따라 20㎝의 수술흔이 인정되고, 하복부는 장관이 유출되어 외부로 나와 있음'이라는 내용과 적십자병원 진료기록의 '간파열' 진단명과 이에 따른 수술적 치료의 방법으로서 피부절개 유형 중 하나인 개복수술이 실시된 것으로 확인한다.

또 5.18조사위는 5.18 해당 시기에 적십자병원 진료비 청구서에 첨부된 '진료비 일일명세서'에 1980년 5월 20일부터 5월 22일까지 처치 및 투입한 약물 등의 기록에 신동남은 5월 20일 적십자병원에 들어와 22일께 사망한 것으로 최종 확인한다.

또 이금영의 이름으로 검시가 이루어졌다가 1980년 6월 21일 이후 신원미상으로 처리된 해당 시신의 검시장소가 1980년 5월 28일 상무관에서 실시된 '광주사태변사체검시보고서'를 통해 신동남의 시신 이동 경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황과 근거 자료, 참고인 진술을 바탕으로 5.18조사위는  묘지번호 4-90번의 신원미상 유해의 유전자와 신동남의 동생 신아무개씨에게 채혈한 혈액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대조한 결과 23개의 유전자좌 중에서 21개의 유전자좌가 일치한 것을 확인한다. 최종적으로 5 전남대학교 법의학교실의 확인 검수를 받았다.

5.18조사위는 최종적으로 최신 유전자 조사 방식을 통해 묘지번호 4-90의 유전자와 행방불명신고자 신동남의 유전자와 유족이 가족관계임을 확인한 것.

송선태 5.18조사위원장이 15일 국립5.18민주묘지 국제세미나실에서 무명열사 신원확인과 유족을 찾는 조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5.18조사위원회 제공
송선태 5.18조사위원장이 15일 국립5.18민주묘지 국제세미나실에서 무명열사 신원확인과 유족을 찾는 조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5.18조사위원회 제공

5.18 당시 30세 형이 5.18 당시에 광주로 일하러 갔다가 행방불명됐다는 것을 알고 1994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행불자 소재 찾기에 접수했다가 찾지 못했던 동생 신아무개(5.18 당시 12세)씨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저희 가족은 형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찾게 됐다. 행불자 찾기에도 실패해서 포기하고 있었다"며 ""형을 잃은 긴 세월만큼 더 긴 시간 함께하고 싶다. 앞으로 형을 잘 모시겠다"고 41년만에 형을 찾은 소감을 말했다.

이날 신동남 유족과 5.18조사위원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 묘 4-90의 주인공 신동남 유공자 묘비에서 헌화와 묵념으로 의식을 치렀다. 

송선태 5.18조사위원장은 "나머지 4명의 무명열사에 대해서도 유가족으로부터 채취한 혈액과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262기 유골, 해남 우슬재, 목포, 광주지역 사체 암매장를 발굴하여 채취한 DNA을 정밀한 방법으로 대조하려고 한다"면서 "또 계엄군 58명이 직접 가담한 암매장 관련 진술, 목격담 등도 교차대조하여 4명의 무명열사의 유족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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