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아시아문화전당 광장서 41주년 추모제 개최
유가족 스님 불교인 조선대 동문 등 참석..'보살도' 개막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한 지광 김동수 열사(5.18 당시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 3년)의 41주년 추모문화제가 22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서 거행됐다.

최근 문화부 옛 전남도청 복원팀이 5.18 당시 '마지막 최후 항쟁지'였던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장악된 후 외신기자 노먼 서프 기자가 촬영한 사진과 일부 영상에서 김동수 열사의 시신이 확인돼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22일 김동수 열사 41주년 추모문화제에서 개막된 '김동수 보살도' 앞에서 보살도를 그린 이상호 화백, 추모제를 주최한 민영돈 조선대학교 총장,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남 김동수 열사 기념사업회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예제하

제41주년 5.18민중항쟁 기념 김동수 열사 추모문화제는 유가족, 불교인, 지인 그리고 조선대학교 동문 등 99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동수열사기념사업회(회장 이남), 조선대학교, 조선대민주평화연구원 주최, 주관으로 열렸다.

추모문화제는 영산재 식전 공연에 이어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발언, 민영돈 조선대총장의 인사말, 김동수 열사 약력보고, 이상호 화백의 '김동수 보살도' 개막, 이병채 박양희 공연, 문영숙의 진혼무, 유가족과 지인으로부터 듣는 열사의 생전 모습과 활동, 윤영덕 의원의 다짐과 발언, 그리고 김동수 열사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옛 전남도청 2층 민원실 앞 현장 답사 등으로 진행됐다.

민영돈 조선대학교 총장은 "김동수 열사의 숭고한 정신은 대한민국과 광주의 금남로 그리고 조선대학교 캠퍼스 곳곳에 녹아있다'며 "열사의 뜻을 이어 받아 민주주의 역사를 굳건히 세우는 것이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제이자 몫"이라고 강조했다. 

김 열사를 어릴 때부터 지켜봤던 송현순(68. 김동수 열사 사촌누나)씨는 "동수는 과묵하고 속정이 깊은 동생이었다"며 "5.18 당시에도 마지막으로 통화하면서도 저를 집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동수는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남아 투쟁하다가 사망했다. 동수의 보살정신이 도청에서 안 나오게 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지난 22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서 거행된 지광 김동수 열사 41주년 추모문화제에서 (오른쪽부터)김 열사의 동생 김동채, 사촌 동생 변미자, 사촌누나 송형순 씨가 열사의 생전 모습을 들려주고 있다. ⓒ예제하
이상호 화백이 '김동수 보살도'를 설명하고 있다. ⓒ예제하

송씨는 "동수의 죽음을 접하고 처음에는 원망을 많이 했다. 고모님(김 열사 모친)이 몸져 누웠을 때도 가슴이 아팠지만, 동수의 선배, 후배들 그리고 스님들이 해마다 동수를 추모하고 모교인 조선대에서 기억을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열사의 친동생 김동채 씨는 "형님의 시신이 계엄군에 끌려가는 영상과 노먼서프 기자가 촬영한 사진을 보며 5.18의 진상규명과 진실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형님이 살아오신다고 해도 형님과 광주시민을 학살한 신군부세력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열사와 함께 조선대학교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고 5.18 당시 목포로 같이 피신했던 이남 김동수열사 기념사업회장(조선대 78학번)도 " 1980년 석가탄신일 봉축행사를 앞두고 광주에서 치를 수 없어 목포에서 치르자는 뜻을 모으고 목포로 갔는데 김동수 열사가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고 광주에서 내려온 트럭을 타고 다시 전남도청으로 들어갔다"며 "당시 동수를 말리지 못해 죽음을 맞이 했다. 유가족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김 열사의 조선대 전자공학과 선배였던 위성삼 5.18유공자도 "당시 도청에서 투쟁할 때는 동수가 후배인지 몰랐다. 도청 안에서 저의 신분을 보장해주고 신뢰해준 후배였다. 상무대 영창에서 뒤늦게 동수가 사망한 소식을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하며 울먹였다. 

지광 김동수 열사의 모친 김병순 님이 추모문화제에 참석하고 있다. ⓒ예제하
김동수 열사의 모교 조선대 출신 윤영덕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예제하

이날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은 옛 전남도청 민원실로 이동하여 최근 공개된 김 열사의 시신 사진을 통해 마지막까지 항전하다가 사망한 곳으로 추정하는 민원실 2층에 대해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추모 묵념으로 올해 추모문화제를 마무리했다. 

김동수 열사는 1958년 7월 전남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부친 김영석과 모친 김병순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삼초교, 장성중, 조대부고를 졸업하고 1978년 조선대 전자공학과 입학한 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조선대지회장, 전남지부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

이경률 문화부 전남도청 복원팀장이 1980년 5월 27일 김동수 열사가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산화한 옛 전남도청 민원실 2층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예제하
지광 김동수 열사 제41주기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이 5.18민중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산화한 옛 전남도청 민원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예제하

1980년 5월 19일 목포로 피신했다가 21일 광주로 돌아와 전남도청 항쟁지도부 학생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7일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새벽 4시30분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산화하여 망월동(묘지번호 86)을 거쳐 1995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1묘역 2-27)에 안장됐다.

1989년 조선대에서 명예공학사 졸업장을 받았으며, 1992년 6월 7일 조선대 캠퍼스에 '지광 김동수 열사 추모비'가 건립됐으며 해마다 김동수기념사업회에서 추모제를 거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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