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톡톡] '에듀케이션' 출구 없는 일상
[영화 톡톡] '에듀케이션' 출구 없는 일상
  • 김서율 시민기자
  • 승인 2021.04.01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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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중 감독의 주목해야 할 데뷔작 '에듀케이션'
김덕중 감독 <에듀케이션>

성희(문혜인)는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졸업을 앞둔 상황이다. 한편 졸업을 위해서는 활동보조서비스로 실습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희에게 활동보조 일은 소명 의식이나 사명감으로서 행하는 일이 아니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 스페인에 정착하는 꿈을 꾸는 그에게 활동보조 일은 현재의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한 수단이자 미래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발판인 셈이다.

그런데 하루 대부분을 의식 없이 누운 채로 생활하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고등학생 현목(김준형)을 마주하면서 성희는 빠져나올 수 없는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표면적인 소재와 줄거리로 영화의 성격을 대략 짐작하고서 <에듀케이션>을 보게 된다면, 많은 지점에서 예상을 벗어날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김덕중 감독은 20대 때 세 달 정도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한 적이 있으며, 장애인 언론사인 ‘비마이너’에서 영상취재 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였다.

하지만 장애인들, 그리고 이들과 밀착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영화에 줄곧 등장함에도 영화는 장애 문제와 장애인들을 둘러싼 이슈를 선점하거나 이를 전면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과 복지 제도 등에 드리운 어두운 현실에 대한 비판에 방점을 찍고 있지도 않다. 곤궁한 청년 세대에 관한 원론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내세우는 영화도 아니다.

장애 활동 지원사와 장애 당사자의 가족인 성희와 현목의 관계는 장애가 있는 현목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편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건드린다.

김덕중 감독 <에듀케이션>

‘숨 좀 쉬면서 살려구요’. ‘남들이 하는 거 다 하면서 살아야지’. <에듀케이션>의 성희와 현목이라는 인물들을 대변하는 대사가 있다면, 이 둘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자는 영화의 전반부에 야학의 상근자인 박 코치가 왜 스페인으로 떠나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성희의 대답이며, 후자는 성희를 꼬드겨 같이 바람을 쐬러 교외로 나가 술을 마시고 취한 현목이 털어놓은 말이다.

허리가 불편한 성희는 최대한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마치고서 스페인으로 떠나 눌러앉아 숨통을 트고 싶다.

장애가 있는 어머니만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신경 써주고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현목은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여 학업은 뒷전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시종 충돌하고 불화하기에 쉬이 융화할 수 없는 둘의 관계는 성인 여성과 미성년 남성, 장애 활동 보조사와 장애인 가족 당사자 사이 등 누구의 손을 쉬이 들어주기 어렵게끔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며 살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여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불편한 몸, 숨쉬기조차 힘든 각박한 현실과 무력감이 팽배한 환경이 이들을 시종 옥죄어 맨다.

김덕중 감독 <에듀케이션>

영화에서는 숨 쉴 여유를 갈망하는 성희가 홀로 장소를 이동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타인의 집, 공적인 장소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성희에겐 자신이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장애 야학이나 현목의 집 외에 성희가 혼자 내부에 머무는 공간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가 제시되지 않는 것을 상기해보자. 성희가 스페인어책을 쭈그려 앉아 보는 화장실이라는 협소한 공간 정도만이 등장한다.

밤에 우연히 마주친 옛 지인들과 얼떨결에 자리에 합석한 성희는 지인의 킥보드를 타고 잠시동안 거리를 배회하지만, 머지않아 되돌아와야 한다. 탈주하고 싶은 욕망이 성희에게 시종 아른거림에도 성희는 좀처럼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조민재 감독 <작은 빛>
오정석 감독 <여름날>
김덕중의 에듀케이션
김덕중 감독 <에듀케이션>

현목은 반복되는 힘겨운 일상에서 나름 여흥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성희를 데리고 우거진 나무들이 드리운 숲으로 향한다.

여기서 잠시 2020년에 개봉했던 주목할만한 독립 영화들 속 동시대의 청년들이 가로지르는 숲이라는 장소와 이들에게 할애된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조민재의 <작은 빛>에서 기억을 잃을지 모르게 되어 큰 수술을 앞둔 진무가 거니는 울창한 숲, 오정석의 <여름날>에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거제도로 무작정 내려온 승희가 걸어가는 길, <에듀케이션>의 침침한 집에서 산책을 나온 성희와 현목이 잠시 머무는 정자와 숲.

소진된 육체, 유예된 시간 속에서 불안한 청년들이 내딛는 한적한 삼림은 각박한 일상에서 빠져나온 안식처가 아니라 또 다른 불안함을 머금은 장소처럼 다가오는 것만 같다.

<에듀케이션>에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성희와 현목 사이의 관계는 영화의 종반부에 이르러 더 크게 벌어진다. 모처럼 야외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돌아온 늦은 밤에 현목이 등에 업은 어머니를 계단에서 놓치는 사고가 난다.

이 때문에 119에 구급 요청을 하자는 성희와 진료 비용을 걱정하며 만류하는 현목 간에 실랑이가 오간다. 성희가 119에 전화하자 현목은 왜 착한 척하냐고 대꾸한다.

관심과 애정을 바랐던 현목에겐 시종 퉁명스럽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만 하는 것처럼 보였던 성희가 응급 상황을 걱정하는 듯 비치는 것이 순간 못마땅했던 현목에 지친 성희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극 중 내내 노곤함에 찌든 무표정과 무감정의 얼굴을 보이던 성희는 결국 혼자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훌쩍인다.

김덕중 감독 <에듀케이션>

그렇게 찢어졌던 두 사람은 생각하지 않았던 활동비가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현목의 집에 성희가 찾아가게 되면서 다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성희는 자신이 돌연 떠난 이후 후속 조치 없이 방치된 채로 누워 있는 현목의 어머니를 발견한다. 현목이 귀가하자 이번엔 두 사람 사이에 몸다툼이 벌어지고 화면이 갑자기 암전되면서 영화는 끝맺는다.

마치 빛이 스며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이들의 어두컴컴한 일상처럼. 숨 좀 쉬고 싶었던 자와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하고 살 수 없는 자, 성희와 현목 두 사람이 직면한 출구 없는 일상에서 이들이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를 관객은 그저 듣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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