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찰칵’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린다. 극장 한켠에 서 있는 내 옆에 웬 남자가 영화제 사진을 무척이나 열심히 찍고 있다. 

왜소한 외모에 안경을 쓴 그는,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조용히 카메라로 무언가를 촬영 중이다. 이날이 나와 유명상 감독과의 첫 만남이었다. 

내가 ‘광주영화판’이라는 곳에 첫발을 들인 계기가 된 <10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그를 본 첫인상은 ‘누구지?’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감독이라고?’라는 반문으로 끝났다.

일본 유학 시절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회고전>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실물을 처음 영접한, 작은 키에 운동화에 배낭을 멘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의, 고레에다 감독을 보고 전혀 감독이라 생각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과 그를 처음 본 그날은 너무나 닮아있다. 

그 이후로 나는 광주에서 열리는 영화제(광주여성영화제, 광주독립영화제)에서 그와 다시 조우한다. 

광주의 영화제 때마다 뒤에서 조용히 영상으로 기록한 그의 카메라에 담긴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은 ‘찰나’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즐겁고 따뜻하고 평온하다. 그런 그의 사진 컷들을 모두들 좋아했고 그가 얼마나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지를 가늠케 했다.

'9회 광주독립영화제'에서 유명상감독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그’가 결코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유자만은 아님을, 겉은 말랑말랑하면서 속은 커다랗고 단단한 씨를 품고 있는 복숭아처럼 외면과 다른 단단한 내면을 갖춘(外柔內剛) ‘소신’ 있는 감독임을 이야기하려 한다.

 유명상 감독은 2010년부터 광주에서 2010년 <신발분실주의(2010)>를 시작으로 <엔딩을 찾아서(2020)>까지 총 7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했으며, 2017년 제작된 <결혼은 하셨는지(2017)>는 ‘2018 충무로 단편영화제’ 각본상 수상, 2019년 제작된 <당신은 안드로이드입니까(2019)>는 ‘2019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단편 경쟁 부분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광주에서 영화를 예전에도 ‘찍었고’, 지금도 ‘찍고’, 앞으로도 ‘찍을’, 영화적인 미래가 기대되는 광주의 ‘독립영화 감독’이다.

 

영화<당신은 안드로이드입니까>중에서

미래적 ‘클리셰’ 너머엔 무엇이?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당신은 안드로이드입니까(2019, 13분)>였다.

‘10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이 작품은 인간들의 노동 중에서 인간을 상대하는 일, 즉 서비스 일을 ‘안드로이드’들이 대신한다는 근(近)미래가 배경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안드로이드 Anda는 어느 날 손님인 한 남성에게서 폭언을 듣고 잠시 쉬는 타임에 다른 가게를 가서 자신이 당한 일과 똑같이 가게 종업원인 Yeon에게 폭언을 행하며 감정의 쓰레기들을 토해내지만 시원치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Yeon 또한 Anda처럼 안드로이드가 아닌 인간이다.

영화는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라는 진부한 도식에서 벗어나 미래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안드로이드에 빗대어 취업, 실업 등 현시대 문제를 다룸으로써 프레임 안(영화 속 세계)과 밖(현실 세계)을 스크린 속에 공존시키며 영화 속 서사가 단순한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임을 각인시킨다. 

이 작품은 ‘8회 광주독립영화제’에서도 상영했으며 유명상이라는 이름을 광주에 다시 한번 알린 가작(佳作)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는 그의 다른 작품에 주목하고자 한다.

 

영화<전역 날>중에서

수컷 이야기 3부작

“신들도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고, 그리고 그 상처도 지쳐서 스스로 아물었다.”(카프카의 프로메테우스 중에서)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전역 날(2013)>은 제목에서도 전해지듯 기훈의 군대 전역 날, 그 하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기훈은 어느 날부터 죽은 선임의 환영이 자꾸만 보이고 전역 날에도 어김없이 그가 따라와 말을 건다. 복수를 해달라는 선임과 함께 먼저 전역한 군 동기인 봉기의 핸드폰 가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군대 선임보다도 더 악독한 가게 사장을 만난다. 

러닝타임 27분이 참 불편하다. 관객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별을 떠나 술병에 찔려 죽은 선임(임선)의 형상(줄곧 술병이 등에 꽂혀 있음)만으로도 관객의 찡그림을 유도케 한다.

“어쩌면 <전역 날>은 제대는 했지만, 사회라는 또 다른 군대에 입대하는 날일 수도 있겠다.”라는 감독의 기획 의도에 맞게 군대 선임이(임선재 분) 휴대폰 가게 사장과 동일인(1인 2역)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군대=사회>라는 조직 사회의 상하 관계 도식을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마지막 시퀀스에서 선임이 곧 기훈이 되고 곧 봉기로 치환되는 씬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대한민국 조직 사회의 알레고리를 연출한다. 군대 선임과 가게 사장은 ‘가시적 호모 비오랑스(Homo Violence, 폭력적 인간)’이지만 기훈과 봉기는 언제 어디서든 행할 수 있는 암묵적인 폭력성이 내재 된 ‘비가시적 호모 비오랑스’이다. 

영화는 수컷사회(대한민국 조직 사회)의 폭력성에 주목하며 암묵적인 정당성이 부여된 1차적 폭력이 가해지는 ‘군대’라는 공간에서 ‘사회’라는 공간으로 전이되는 폭력성을 이야기한다. 

이 폭력성은 “이젠 네 차례라고 했잖아. 나 쉽게 안죽는다고...”했던 선임의 유령의 언어 같은 대사처럼 대한민국 사회에서 절대 소멸될 수 없는, 소멸 되기 힘들 것이라는 비극적 여운을 남긴다.

영화<결혼은 하셨는지>중에서

영화 <결혼은 하셨는지(2017)>는 결혼 청첩장 비디오 촬영기사인 주인공이 어느 신혼부부를 촬영하러 갔다가 경제적으로 궁핍해 보이는 모습에 받은 촬영비를 몰래 갓난아이 기저귀 사이에 두고 오지만 기저귀 한 통만 사 오라는 아내의 전화에 다시 그 집으로 가 기저귀 사이에 놓아둔 돈을 꺼내려는 순간, 갓난아이가 울게 되고 아이를 달래보려 웃픈 웃음을 지으며 끝이 나는 14분짜리 단편영화이다.

‘2018 충무로 단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내가 본 유감독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영화이다.

‘누가 누구를 동정하는가?’ 영화는 가난한 신혼부부를 통해 현실의 결혼을 이야기한다.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가난한 신혼부부의 애틋함은 더이상 재미와 흥미를 이끌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진부함을 깬다. 이 점이 유명상 감독 영화의 묘미가 아닌지.

‘가난하지만 우린 행복해’라는 신혼부부의 가식적인 모습과 촬영감독의 과시적인 행동(촬영비를 기저귀 사이에 몰래 숨겨 놓은)이 판타지적으로 다가올 때 큰 반전을 선사하는 마지막 씬은 현실의 허를 찌른다. 

누구를 동정할 처지가 아닌 촬영기사, 당장에 기저귀값도 없으면서 가난한 신혼부부를 도우려 했던 그를 애잔하게 보려 하는 순간, 감독은 그를 최고의 구질구질한 남성으로 전락시킨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가져가려 하는 엔딩 씬에서 촬영기사의 웃픈 웃음은 건방진 동정이 불러일으킨 감성적 폭력으로 읽혀지며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는 이를 가시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큰 울림은 인간의 내면, 절대 숨길 수 없는 절대적인 권력(돈)에로의 욕망이란 인간의 마지막 모럴리티 마저도 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인간의 도덕적 미(美)와 추(醜)는 한 끗 차이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엔딩을 찾아서(2020)>는 유감독의 최신작으로 나이 든 할아버지가 자신의 마지막 죽음을 어디서 맞을지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며 그 자신의 마지막 씬을 찍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메다 우연히 영화를 찍는 두 고등학생인 소녀를 만나 자신과 소녀들 영화의 마지막 씬을 찍고 숨을 거둔다는 10분 정도의 짧은 영화이다. 

할아버지의 전사(全史)에 대한 부연 설명은 없지만 그의 행색만으로도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조심히 유추해본다. 고단한 삶을 살다 이제는 지쳐 자신의 죽을 곳을 찾아 헤매는 한 마리 수사자 같은 노인의 모습이 애잔하다.

나는 위의 세 영화를 유명상 감독의 <수컷 이야기 3부작>이라고 명명(命名)하려 한다.

왜? 세 작품 모두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 남성의 욕망(폭력성, 과시욕, 허세욕, 찌질함)이 모두 그려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세 영화를 연결해 보면 군대 안의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온 한 남성이, 군대를 다녀온 후 결혼을 했지만 변변치 못한 돈벌이에 안정된 생활보다는 고단한 생활을 해 오다가, 노년에 병약해진 심신을 이끌고 사방을 떠돌다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는, 마치 한편의 ‘어느 수컷의 삶’이라는 장편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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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이 불합리한 본능적 충동을 하는 이유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때문이라고 한다. 에로스는 삶에 대한 본능, 성에 대한 본능을 말한다면 타나토스는 죽음에 대한 본능을 가리킨다. 

홍상수 영화에서 찌질한 남성들의 이야기의 근본이 에로스에서 오는 찌질함이라고 한다면 유명상 감독의 영화에서 찌질한 남성들은 폭력성에 의한 타나토스에서 오는 찌질함이라 할 수 있다.

<전역 날>에서의 “군대이기 때문에, 사회이기 때문에”라는 정당화된 불합리한 폭력, 그리고 <결혼은 하셨는지>에서의 감성적 폭력(감정폭력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 <당신은 안드로이드입니까>의 첫 씬에서 남자 손님의 “야”로 시작하는 언어적 폭력까지, 유감독은 대한민국 사회 남성들의 본성과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힌 폭력성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남성 폭력에의 성찰은 감독 본연의 사고(思考)와 더불어 오랜 시간 그의 작품의 프로듀서를 해온 김신혜 PD의 영향력도 있으리라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감독이 남성에 관한 성찰을 영화를 통해 재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단단한 내강(內剛)이 느껴진다.

그는 지금 장편영화를 구상 중이다. 지금껏 광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광주시민인 나에게도 친숙한 골목 곳곳에서 단편들을 촬영해온 ‘그’, 앞으로 나올 작품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사뭇 기대된다.

<유명상 감독 필모그래피>

2010.10 단편 ‘신발분실주의’ 연출 - 2010 공주 신상옥 청년영화제 경쟁

2011. 8 단편 ‘빨래’ 연출

2013. 8 단편 ‘전역날’ 연출 - 2013 광주독립영화제 상영

2014.10 단편 ‘아무도 없었다’ 연출 - 2015 광주독립영화제 상영

2017.11 단편 ‘결혼은 하셨는지’ 연출 - 2018 충무로 단편영화제 각본상

2019. 2 단편 ‘당신은 안드로이드입니까’ 연출 - 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단편경쟁

2020.10 단편 ‘엔딩을 찾아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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