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관계의 진실을 찾아가는 작가 조명훈
[범현이의 작가탐방] 관계의 진실을 찾아가는 작가 조명훈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1.02.11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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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은 현실이 된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우뚝 자리하고 있는 상가 2층에 작가가 자리하고 있다.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벽 이곳저곳에 작가의 실험작들이 걸려있다.

자신의 경험과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연결시켜 실험 중이라고 했다. 완성된 작품을 눈에 보이는 위치에 세워주고 오랜시간 무심한 듯 바라보다 생각이 바뀌면 다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는 그림을 가리키며 ‘미완성작’이라 말했다.

밥을 먹고 차를 끓일 수 있는 모서리의 작은 방의 창 너머로는 바람이 불어왔고, 역시 아파트 가득한 풍경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오랜 시간을 건너왔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빼어난 소묘실력으로 대학시절부터 입시학원 강사를 줄곳 했다. 졸업 후에도 학원에 발 담근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작업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그나마 입시학원에서 쉬지 않고 소묘를 해서 소묘만큼은 생각과 동시에 완성까지 게으름 피우지 않게 되었다.”며 웃었다.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캔버스의 요철이 민들거릴 때까지 덧칠을 한다. 작가는 삶의 과정마저도 덧칠해가는 과정과 닮았다고 했다. 작가는 “오래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았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림을 보면 받은 상처가 꽤 깊었나보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고백했다.

상처를 지우기 위해 잊으려 노력했다. 완성된 그림이 미완성으로 여겨져 그 위에 새로운 그림으로 다시 덧칠해내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는 다시 사람과의 관계 맺음으로 치유하고 싶었다.

작업의 내용이 작가의 상태를 보여준다. 낮고 음울한 색감. 채도가 거의 사라진 어두운 빛. 구분마저 안 되는 빛이 없는 명암. 선과 선이 또 다른 선과 선으로 뒤덮인 비정형적 혼란. 한치의 비어있는 공간마저도 허락하지 않은 의식의 흐름.

세상의 모든 부드러움은 가시에 노출되면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스스로 안으로 문을 걸어 잠근다. 발육과 성장을 멈추고, 치유가 완성될 때까지 미완성을 지속한다. 다시 그림에 몰두한다. 생애 처음 전시도 계획했다. 오랜 시간을 견뎠다. 이제는 스스로 자신을 발굴해야만 한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폴란드 출신의 환시미술의 창시자로 불리는 지슬라브 백진스키(Zdzislaw Beksinski)를 좋아한다. 유년시절에 받았던 2차세계대전의 상처와 그에 따른 트라우마가 환시를 만들어냈고, 조형으로 이끌어냈다고 평론가들은 말했다.

기괴하고 암울한 그림들은 어쩌면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유년의 환경은 평생을 죄우하는 영향을 미치는데, 전후시대를 건너오면서 그가 받았던 상처는 아마도 짐작할 수도 없는 중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작가가 받았던 상처의 무게와 백진스키의 무게는 서로 비교 불가의 무게감이다. 손톱만한 돌에 개미는 죽고, 총에 맞아 덩치 큰 곰도 죽는다.

생명을 앗는 도구와 환경은 다르지만 결국은 전부인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같다. 작가의 그림 속에는 백진스키의 트라우마와 ‘결국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메시지가 같은 분량으로 담겨있다.

바라볼수록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림으로 그려진 뇌의 시놉시스 구조를 표현해놓은 것만 같다. 서로 얽히고 얽혀 도저히 정리할 수도, 풀어지지도 않을 것만 같은 선과 선들이 땅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쌓인 솔잎처럼 쌓여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백진스키를 좋아한다. 내 작업은 그와 많이 닮았다. 비정형성과 무채색을 주로 입힌다. 그림이 무엇인지, 굳이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백진스키처럼 완성된 작품에 이름을 지어주지도 않는다. 표방하는 은유와 상징도 없고 이미지에 대한 해답을 갖지 않는다.

다만, 내 의식이 가는 대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기억해내면서 손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분할을 생각하면서 채색하고 선을 그어갈 뿐이다.”고 설명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는 늘 화두다. 즉흥적 느낌이 올 때 구도를 정하고 조형으로 이끄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완성된 작품에 의미부여도 하지 않는다. 더불어 이것이 무엇이다고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이제 그 작업들을 보여줄 때가 왔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5호(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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