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톡톡] 지구를 지켜라!
[영화 톡톡] 지구를 지켜라!
  • 정찬혁 시민기자
  • 승인 2021.01.30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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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내언니 전지현과 나'

<스타워즈>, <아바타>, <어벤져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SF영화? 헐리우드 영화?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멸망하는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영화들은멸망에 빠진 세계를 구원하는 그럴듯한 허구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현란하게 펼쳐 친다.

그런데 세계의 멸망이 진실이고, 그런 세계를 구원하는 사람들이 실재한다면 어떨까? 그런 흥미진진한 영화가 여기에 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이다. 그러나 맥이 좀 빠지겠지만 이 영화에서 위기에 빠진 세계는 실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 온라인 게임 <일랜시아>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들은 실재하는 사람들이다.

위험에 빠진 가상세계, 일랜시아는 1999년 넥슨이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대규모 다중 접속 온라인게임)이다.

런칭 당시 일랜시아는 완성도 높은 세계관과 높은 자유도로 많은 유저를 끌어 모았으나,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 평균 접속자가 200명 남짓인 ‘망겜’(망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일랜시아를 만든 운영자조차 더 이상 게임을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일랜시아는 신에게 버림받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창조주가 세계를 버렸으니, 일랜시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이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불법으로 간주하는 ‘매크로’(반복작업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가 세계의 법으로 통용된다.

불법이 합법이 된 세계 속의 주민들 사이에 사기 거래까지 횡횡하여 그간의 정(情) 때문에 일랜시아에 머물던 골수 유저들마저 게임을 접는 상황이다.

그런데 불법으로나마 평화를 유지하던 일랜시아에 총체적 위기가 찾아온다. 한 악질 유저의 소행으로 플레이어들이 서로 마주치면 자동으로 접속이 끊겨버리는 ‘팅 버그’가 역병처럼 퍼지면서 일랜시아의 세계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런 악질적인 버그는  운영자가 아니면 고칠 수 없다.

따라서 위험에 빠진 세계를 구출하기 위해 일랜시아의 유저 ‘내언니전지현’(박윤진 감독의 게임 캐릭터 이름)과 사람들이 운영자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영화가 <내언니전지현과 나>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렇게 망한 세계를 붙잡고 있을까? 이 영화의 감독이자 일랜시아 유저인 박윤진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시험은 망칠 수도 있지만, 게임에서 올린 능력치는 일한 만큼 정직하게 반영되니까” 적어도 일랜시아는 투자한 시간만큼 유저에게 성취감을 선사하는 세계였다.

현실은 게임 속의 세계처럼 노력에 언제나 합당한 보상을 선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성공이 항상 노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랜시아의 세계에는 이러한 치열한 경쟁이 없다. 일랜시아는 누구나 노력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유저들이 노력으로 얻는 것은 더 많은 아이템이나 강한 무기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다. 다른 게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대장장이, 목공사, 미용사와 같은 직업들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다른 유저의 아이템을 만들어주거나 캐릭터의 머리를 예쁘게 다듬어 주는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세계 속에서 일상을 이어간다. 게임 속의 다양한 직업들이 경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유저의 개성을 표현하는 표현의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랜시아의 세계에는 실패가 없다. 세계 속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곧 목적이며 게임의 정체성이기에 일랜시아의 주민들은 강한 아이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즉 치열한 경쟁을 강요하는 현실이 선사하지 못하는 일상이 일랜시아의 세계 속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일랜시아에 빠져 살았던 아이들은 이제 인생을 고민하는 청년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일랜시아는 여전히 일상이 깃들어 있는 현존하는 세계이다. 물론 이들이 현실을 망각한 채 게임에 중독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박윤진 감독을 비롯하여 청년이 된 일랜시아의 유저들은 또래의 여느 청년들과 같이 현실을 살아간다.

박윤진 감독이 인터뷰한 일랜시아의 유저들 또한 현실의 어려움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우리네 청춘들이다.

힘들었던 하루 마치고 친구와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제2의 세계가 이들에게는 일랜시아였던 것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그들의 삶에 스며든 일상적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소중한 세계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세상을 구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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