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따뜻한 시선, 따뜻한 새상- 김선희 작가
[범현이의 작가탐방] 따뜻한 시선, 따뜻한 새상- 김선희 작가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1.01.24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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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람 앞에 섰다.

아파트 상가 3층. <꿈꾸는 화실> 안에 작가가 있다. 매일, 매시간 엉성한,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너무나 멀리 있어서 현실감마저 없는 막막한 꿈을 꾼다.

하지만 즐겁다. 꿈을 꿀 수 있는 상태. 캔버스는 눈높이에 세워져 있고, 하늘은 푸르고 색색의 물감은 아름답다. 이곳에 자리한 지 7년이 지났다.

시간은 여전히 바람처럼 지나지만 꿈꾸는 것은 여전하다. 쓸쓸하면서 몸서리치도록 영원히 내 것이 아닐 것 같은 분량의 꿈을 즐긴다. 어쩌면 방금까지 꾸었던 꿈이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떠나와 보니 이젠 되돌아갈 수가 없어

김선희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김선희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서른둘에 다시 붓을 들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채워지지 않은 헛헛함을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단지 생각이었을 뿐, 작가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4년의 학부생활을 청강하며 자신의 실력을 키웠다.

작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 무렵의 학부생들에게 민폐였을 것 같다. 그때는 공부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길 따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인체 드로잉, 누드크로키, 전공필수 과목들까지 모두 공부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함께했던 학부생들에게 미안하다.”며 웃었다.

평면 작업을 열망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첫 번째 전시는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로서 우뚝 서기 위한 정체성에 관한 천착이었다.

무언가에 열중하며 보여준 여자의 뒷모습은 간결하게 결기에 차 있다. 팽팽한 뒤 목의 선과 굳건해 보이는 어깨뼈들이 그것을 증거한다. 작가는 은연중에 자신의 앞날에 대한 예고를 그림 속 여자를 통해 대변하고 있다.

후회하지 않는다. 채울 수 없었던 헛헛함은 붓과 색색의 물감이 채워주었다. 물리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제적 설움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잊었다. 꿈을 꿀 수 있었다.

얼굴을 보일 순 없지만 굳건한 뒷모습의 목뼈가 작가의 자아와 자존을 받쳐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자랐고, 이젠 되돌아갈 수 없는 현재에 작가는 머물고 있다. 예전과는 다른, 좀 더 멀리 갈 수 있는 크고 너른 꿈과 더불어.

목각인형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구체관절 인형으로 작가는 다시 자신을 만난다. 움직일 수 있는 손과 팔, 다리는 있지만, 얼굴이 없는 인형이다. 눈과 코, 귀와 입이 없는 인형은 웃을 수도 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딘가를 향해 걷고 무엇인가를 만질 수는 있다. 작가로서의 결기를 찾아가는 여정 중에 있는 목각인형은 멀리 있을 것만 같은 꿈을 향해 날개를 달며 날아가기도 하며 자연물을 만난다. 심연의 깊은 곳에서 작가는 자신을 이끄는 대로 나아가며 때로는 멈춘다.

어린 시절 자신이 보았던 사물, 자연물에 집중한다. 오색의 콩을 만나기도 하고, 파와 배추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을 있게 한 가족과 동물을 넘어선 반려동물로서의 가족이 그것이다.

김선희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김선희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마침내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세계에 안정하며 안착한다. 지금은 바람이 되어버린 막동이 슈나우져의 개구진 모습과 아이들에게는 한없는 슈퍼맨인 아빠의 모습까지도 작업 안으로 들어온다.

작가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존재다. 11년을 함께했던 슈나우져는 작업 안에서 살아서 꼬리를 친다.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집으로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는 문 앞의 표정까지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모든 것은 현실이다. 멀리 가지 않는다.

주변의 사물,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 늘 함께하는 가족, 날마다 꾸는 꿈같은 현실 등이 작가의 작업 속 풍경들이다. 한 가지에 몰두하지 않는다. 마음이 가는 대로 붓을 움직인다. 생각 속의 한 장면. 기억 속의 편린.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상상과 꿈속의 주제들이다.

작가는 “한가지의 작업에 매몰하고 싶지는 않다. 마음이 가는 대로 작업으로 풀어낼 것이다. 동물 시리즈를 계속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눈길이 가는 것을 찾아 작업으로 엮어낼 것이다.”고 말했다.

다시 꿈을 꾼다. 도자작업이다. 백자와 청화백자로 빚은 세상의 술병. 술은 모든 것을 부풀게 한다. 아름답게 하고 절망에 빠트리며 도전의식을 불태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작업이 도자로 눈길이 머문다.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4호(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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