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두 남자는 어느 동네를 배회한다. 한 남자는 촬영감독이고 다른 남자는 연출이다. 이들은 지난 겨울에 화제가 됐던 광주역 목도리녀에게 목도리를 건네받은 노숙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노숙인이 기거하는 집을 찾게 된다.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은 도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연출은 자고 있는 노숙인을 깨워 인터뷰를 시도한다.

백종록 감독. ⓒ광주아트가이드
백종록 감독. ⓒ광주아트가이드

연출은 보다 원활한 인터뷰 진행을 위해 노숙인에게 술을 권하며 말문을 연다. 카메라를 의식한 노숙인은 소리를 지르며 촬영을 거부한다. 연출은 카메라 감독을 나무라며 노숙인을 진정시켜 재차 인터뷰를 시도한다.

어렵게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술에 취한 노숙인은 연출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을 반복한다. 연출이 노숙인에게 원하는 것은 노숙인이 자신에게 목도리를 건네준 목도리녀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노숙인은 목도리녀 때문에 고향에 가지도 못했고, 목도리녀 역시 노숙인이 걱정되어서 목도리를 주었기보다는 이제 막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분노로 인해 헤어진 남자친구가 사준 목도리를 노숙인에게 준 것이었다.

그러니 노숙인은 연출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연출은 노숙인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자 돈을 건넨다. 노숙인은 내키지 않지만 돈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서 연출의 지시를 따른다.

연출은 노숙인에게 멘트를 정해주며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노숙인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며 카메라에 담고 싶은 노숙인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연출은 노숙인에게 목도리녀에게 보낼 영상편지만을 요구했으나 영상편지 촬영이 끝나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노숙인이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필요했던 연출은 노숙인에게 폐가전제품을 수레에 실어서 나르라고 지시한다.

노숙인은 연출의 요구를 저버리지 못하고 연출의 요구대로 폐가전제품을 수레에 실어 자신이 기거하는 집으로 옮겨오고 이를 카메라에 담은 연출은 촬영을 종료한다.

하지만 연출의 욕심은 멈출 줄 모른다. 연출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경찰에게 전화해 노숙인이 기거하는 집 인근을 순찰할 것을 요구한다.

경찰이 순찰을 위해 노숙인이 기거하는 집 앞에 출동할 즈음 노숙인은 자신이 수레에 싣고 온 폐가전제품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려다 경찰에게 붙잡힌다.

노숙인은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을 밀치고 도망가고 연출은 이 광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흥분에 휩싸인 체 도망가는 노숙인을 쫓는다.

노숙인을 찾은 연출은 카메라를 설치한 채 노숙인을 골목으로 유인한다. 연출이 시키는대로 골목으로 숨은 노숙인은 설치된 카메라를 발견하고 골목길을 벗어나다가 차에 치인다.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제쳐두고 노숙인에게 달려가지만 연출은 카메라를 챙겨 노숙인을 찍으려 한다.

이내 화면은 어두워지고 카메라에는 자동차 엔진소리와 연출의 숨소리 그리고 노숙인의 신음소리가 담긴다. 여기까지가 오프 스크린 즉 스크린 밖에서 일어난 ‘진실’이다.

그렇다면 스크린에 담긴 모습은 어떠할까? 우선 목도리녀는 노숙인이 추워 보였고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목도리밖에 없어서 노숙인에게 목도리를 건넸다고 한다.

목도리녀는 노숙인이 기거하던 집과 동네를 찾아다니며 노숙인의 행방을 묻는다. 경찰을 통해 노숙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음을 알게 된 목도리녀는 슬픔에 잠기며 화면에는 노숙인이 목도리녀에게 보낸 영상편지와 노숙인이 폐가전제품을 옮기는 장면과 함께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자막이 나타난다. 스크린에 담긴 모습은 가공된 ‘사실’이다.

백종록 감독은 “영상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마저 그렇다. 연출이란 스크린 밖에서 스크린 안에 있는 것들을 움직이는 것이다.

영화 '오프스크린' 스틸컷.
영화 '오프스크린' 스틸컷.

<오프 스크린>은 밖에서 안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갖는다”고 <오프 스크린>에 대해 소개했다.

하나의 진실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이 난무하게 되는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파되는지를 관객은 <오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카메라에 담기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연출의 소리, 이것이 편집됐을 때 일으키는 감정들, 내가 어떻게 미디어에 농락당하고 있나?” 등을 표현하여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는 백종록 감독은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주목하여 <오프 스크린>을 만들었다.

미디어의 범람으로 진실과 사실을 구분하기가 더욱 힘든 요즘 10여년 전에 제작된 <오프 스크린>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여전히 의미 있을 것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4호(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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