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고독의 내면을 응시하며.. 참된 ‘나’를 찾아 떠나는 치유의 서사
문학들, 김경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에 꽃이 피네' 최근 출간

소설가 김경희의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에 꽃이 피네』(문학들 출판사)가 출간됐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이름은 지숙이다. “지혜롭고도 맑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숙이 “배냇짓을 하다 옹알이를 하고, 고개를 가누고, 엎드리기를 하고, 방바닥을 기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지숙의 어머니 박 씨는 첫날밤을 치르던 날 신랑의 기침 소리가 잦다는 걸 이상하게 여겼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인다.

김경희 소설 '오래된 정원에 꽃이이 피네' 표지그림. ⓒ문학들
김경희 소설 '오래된 정원에 꽃이이 피네' 표지그림. ⓒ문학들

박 씨는 “긴 봄날의 해를 견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가난 탓에 팔리다시피 시집갔다. “과분함 뒤에는 반드시 치명적인 오점이, 음흉하게 숨어 있는 복병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당장에라도 식구들의 입 하나를 덜어내는 일이 더 중요했다.

남편이 지병으로 죽자 박 씨는 그 집이 며느리가 아닌 종이 되어 버린다. 새벽부터 집안 살림을 하고, 밭에 나가서는 온종일 밭일을 해야 했다.

몸이 바쁘면 생각은 고요해지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 것도 잠깐이었다. 친정에서 버려지다시피 시집간 신세였다. 몸도 마음도 둘 곳이 없었다.

박 씨는 끊임없이 풍파를 자신에게 쏟아내는 세상과 마주하느라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 그렇게 지숙의 마음은 고독에 묻힌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드넓은 바다에서 일렁이는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조롱박” 같은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죽음으로 인한 아버지의 항구적 부재와 생존을 위해 세상과 마주하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느라 딸을 돌보지 못했던 어머니로 인해 생긴 가슴속의 구멍에서 시작된다.

마음에 생긴 구멍이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쳐 지숙은 자궁 적출 수술을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그녀는 어머니 박 씨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지숙에게 “어머니와 닮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머니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와 같았다.

그러나 자궁을 들어냈다는, 몸의 살(殺)을 겪으며 생긴 공통점이 지숙으로 하여금 그녀의 삶과 겹쳐진 어머니의 인생을 돌이켜 보게 만든다.

이 소설의 목차 구성에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찾아볼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일주문을 통해 속(俗)의 영역에서 성(聖)의 영역으로 들어가 자신의 고통과 직면하는 일, 그토록 가혹했던 어린 시절 통과의례의 가시밭길을 역행하여 마주해야만 하는 치유의 길, 이 모든 것이 공감과 용서, 곧 불이문 너머의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김경희 소설가.
김경희 소설가.

“김경희 소설에서 자기 치유의 진정성은 성과 속의 경계에 ‘문 없는 문’을 배치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 또는 기억과 상처 사이의 경계를 지워 버린 데에 있다. 두 영역 사이의 넓은 길은 우리를 물리적 시공간에 묶인 존재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해탈로 인도한다. …(중략) 더불어 이 소설의 가치는 유예된 아픔을 소환해 언어화하는 방식으로 승화시키며 주체를 마주침에 대한 질문을 모두에게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김영삼 문학평론가)

김경희 소설가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2000년 <광남일보>와 200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광주문학상’, ‘국제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어둠 짙을수록 더욱 빛나지』 외 4권의 수필집을 냈고, 소설집 『새들 날아오르다』, 『켄타우로스, 날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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