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아르헨티나, 오월어머니회와 5월 광장 어머니회

수메르 신화에서 길가메쉬는 절친한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부정하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엔키두의 몸이 부패하며 벌레가 나오자 죽음 앞에서 무력한 인간에 대해 절망을 느끼고, 죽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난다.

1980년 오월의 어느 날 한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자식 잃은 슬픔에 곧 정신을 놓을 것이라 했다.

ⓒ제작사 반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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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길가메쉬가 그랬듯 얼굴 절반이 사라진 아들의 몸에서 기어 나온 벌레를 본다. 그리고 인간 삶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대신 흩어져가던 정신을 다잡고, 폭도로 죽어간 아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고난의 길을 떠난다.

내 자식은 폭도가 아니라는 그녀들에게 공권력은 무자비했다, 그러나 차디찬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자면서,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좌파라는 낙인 앞에서도 그녀들은 수십 년 동안 외쳤다. 내 아들은 폭도가 아니다!

1977년 사월의 어느 날 사방팔방으로 사라진 자식을 찾아다니던 어머니들이 5월 광장에 모였다. 자식 키운 집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기저귀를 머릿수건으로 두르고 광장 안을 수십 년 동안 걷고 또 걸었다. 내 아이를 돌려달라고.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 (사진=제작사 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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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감독 임흥순)’는 멀리 떨어진 두 나라에서 자행된 서로 닮은 비극과 그 비극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을 다루고 있다.

광주의 5·18이 그랬듯 아르헨티나에서도 소위 더러운 전쟁(Guerra Sucia)’라 불리는 비델라 군사정권 시기 동안 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희생됐다. 희생자들 일부는 비행기에 실려 강과 바다에 버려졌기에 시신조차 찾을 수 없다.

실종된 자식을 둔 어머니들은 자식의 행방을 찾아 헤매다 대통령궁 앞 5월 광장까지 가게 되었고, 광장 여기저기에서 울던 어머니들은 서로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를 잃었나요?”

그리고 매주 목요일, 기저귀로 만든 머릿수건을 하고 5월 광장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제 그녀들은 아르헨티나에서 민주와 인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저 힘없고 무지한 여인이었던 그녀들은 자식의 억울한 죽음 이후 더 이상 산자로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 광인 아니면 죽은 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평생토록 자식의 죽음을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

영화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의 할머니는 손녀를 가둔 보호시설 앞에서 하루 종일 목 놓아 이방인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불어를 못하는 이민자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에 깃든 슬픔은 사람들을 움직인다.

조직적인 저항을 펼칠 재간도 능력도 없는 그녀들 역시 사람들이 들어줄 때까지 목 놓아 외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경찰서, 사법부 등 모든 기관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그녀들에게 귀 기울이는 권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안티고네’ ⓒ네이버 영화 제공
영화 ‘안티고네’ ⓒ네이버 영화 제공

그녀들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대신 광장으로, 열린 곳으로 나가 타인들에게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자신의 고통과 함께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그대로 내보이는 그녀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녀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리 되었는지 자책하면서도 살아생전에 자식의 뼛조각 하나라도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그녀들. 자식 잃은 그녀들의 외침에는 그 어떤 이념과 사상도 필요하지 않다.

날것 그대로의 슬픔, 그 원초적인 슬픔 앞에서 우리는 차마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형사재판일에 광주지방법원 앞에 모인 오월어머니회 회원들 ⓒ천지일보
전두환의 형사재판일에 광주지방법원 앞에 모인 오월어머니회 회원들 ⓒ천지일보

자식의 죽음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다. 내 아이가 왜 그렇게 죽어가야만 했는지 진실을 규명하고, 그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 권력이 또다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원할 뿐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요구는 아직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비록 권력이 세월 속에서 힘을 잃고 그녀들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빛을 잃었어도 그녀들의 슬픔만은 더욱 선명하게 짙어지고 있다.

이제 그녀들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권력에 맞선 투사가 되었으나, 그녀들을 저항의 상징으로 칭송하기에는 그 슬픔의 색이 너무도 처연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광장에 모일 수 없게 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창문과 발코니에 내걸린 하얀 손수건(화면에 보이는 Nunca Más는 '다시는 안돼'라는 뜻)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광장에 모일 수 없게 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창문과 발코니에 내걸린 하얀 손수건(화면에 보이는 Nunca Más는 '다시는 안돼'라는 뜻)   ⓒ연합뉴스

발 이제는 더 이상 그녀들이 광장에 나가지 않기를, 더 이상 이방인의 언어로 목 놓아 노래 부르지 않기를, 이제는 두 도시가 그 이름처럼 좋은 빛으로, ‘좋은 공기로 기억되기를.

부디 더 이상 자식 잃은 자들이 장사 지낼 시신조차 찾지 못해 망연자실하는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4월에 마주할 노란 봄빛이 더 이상 먹먹한 서글픔으로 다가오지 않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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