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또 온다. 가는 녀석도 오는 녀석도 한 마디 말이 없다. 고개 한 번 까딱하지 않고 손 한 번 흔들지도 않는다. 보내는 이만 코끝이 찡해 하염없이 손을 흔든다.

맞이하는 이만 가슴 벅차하며 환영사를 흩뿌린다. 메리 크리스마스로 시작하여 송구영신으로 끝나는 세밑 1주일 여의 통상적인 풍경 이야기다.

ⓒ광주인

그런데 이번엔 예전과 좀 다른 것 같다. 가는 2020년에 대해선 아쉬움과 서운함보다 얼른 쫓아 보내고 싶은 조급증이, 오는 2021년에 대해선 기대와 환영보단 의심과 회의가 더 짙은 듯하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가져다준 음울한 세밑 풍경이다.

지난 1년이 우리 일상에 끼친 엄청난 변화와 수많은 상실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무슨 무슨 전문가들이 아무리 떠들어댔어도 우리 모두 불편과 짜증을 감내해야 했고, 억울과 분노와 무기력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건 분명하니까.

하지만 코로나19가 촉발한 ‘방역수칙 3밀 금지’가 뜻하지 않은 은유로 의미 있는 변화에의 예감을 안겨준 것에 대해선 굳이 말을 아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겪은 지난 1년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 혹은 의미 찾기를 위해서라도.

밀폐;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해온 자본이 은밀스럽게 밀폐해 버린 자연과 노동의 착취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에 적지 않은 질문을 남겼다.

오로지 돈만을 쫓아 달려서 우리가 도달할 곳은 어디인가? 우리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밀집; 온갖 기계와 도구들이 쏟아내는 온실가스가 밀집되어 쌓임으로써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라는 절박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끝없는 편리 추구가 우릴 행복으로 이끄는가? 우리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밀접; 신앙과 신념에 따른 어느 한 집단의 밀접 접촉이 국가와 국민이라는 전체 공동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도 있음을 보았다. 내가 속한 집단의 신념이 진정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의 신념인가? 우리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지난 1년간 코로나19가 휩쓴 지구별에서 숱한 고통과 슬픔, 우울과 절망이 우릴 좌절시켜왔으나 그래도 무릎 꿇지 않고 버텨낸 힘은 바로 저런 질문, 저런 성찰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앞이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을 헤쳐 오느라 몸도 맘도 지친 우리 곁을 지나 2020년이 가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안전 안내 문자와 확진자 수 알리미 뉴스에 포박당한 채, 공포에 저당 잡힌 일상을 견디고 있는 우릴 모른 척 남겨두고서,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31일 광주 서구 쌍촌동 언덕에서 바라본 무등산과 광주 시내 풍경. ⓒ김석정
31일 광주 서구 쌍촌동 언덕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부가 흰눈으로 덮여 있다. ⓒ김석정

까짓거 미련 없이 보내 버리자. 잘 가라고 손 흔들어 기꺼이 떠나보내자. 두 번 다시는 오지 말라고. 영영 오지 말라고.

희망 섞인 풍문을 흘리며 2021년이 오고 있다. 코로나19로부터의 탈출 가능성을 유포하면서도, 환호성이나 깊은 신뢰 따윈 거부하는 쿨하기 짝없는 낯빛으로. 그럼에도 우린 고개를 빼물고 저기 다가오는, 아직은 알 수 없는 2021년의 흐릿한 실루엣을 눈에 담으려 애를 쓰는 중이다.

습관적인 기대일지라도 우린 기대를 품고, 상투적인 환영 인사일지라도 우리 마음은 들떠 설레고 있다. 그러니 기꺼이 품을 열어 맞이하자. 가는 녀석과는 전혀 다른, 안도와 위로의 얼굴로 오라고. 평온과 일상의 모습으로 오라고.

광주인 독자님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모쪼록 건강하십시오!

눈내리는 겨울 한 날, 이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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