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0일은, 우리 역사를 바꾼 위대한 순간 중 하루가 되었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이른바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공수처가 출범할 수 있을지, 우려하던 국민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래 걸렸습니다. 1996년 11월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 입법 청원을 기점으로 하면 24년이 지났습니다.

검찰의 기소독점을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로 보면, 66년 만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검찰공화국’의 멍에를 벗을 수 있는 출발점에 썼을 뿐입니다.

공수처 출범은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적 공감대도 컸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되레 정권 흔들기에 나섰습니다. 선거 때는 공수처 신설을 공약했던 야당도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은 검찰 대변인처럼 굴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준 일련의 상황들입니다. 촛불혁명으로 민주정부가 탄생했다고 ‘민주사회’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겨우 정치권력 하나 바뀐 것입니다. 기업, 금융, 법률, 언론, 교육, 통신 등 대부분의 영역은 소수의 기득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경제적 과두지배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과두지배체제의 대립, 충돌이 우리 사회를 규정짓는 모순입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사회경제적 기득권의 저항은 심화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 모두 공통적으로 겪었고, 또 겪고 있습니다.

반면 정치적 민주화가 역행할수록 사회경제적 기득권은 강화되어 왔습니다. ‘제도로서 민주주의’, ‘사회 모든 영역의 민주화’가 진전되지 않으면, 비극적 역사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수처법 개정안, 그리고 국가정보원과 경찰 관련 법안들의 통과 등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도 ‘지속 가능성’이란 개념을 쓸 수 있습니다. 정권의 선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발전이 목표여야 합니다.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까지 도달해야 민주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래 걸릴 것입니다. 이미 경험한 것처럼,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이 화두를 모든 국민이 한시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직 촛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윗 칼럼은 <광주문화방송>에  소개된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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