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풍경을 담은 박배일 감독의 '라스트 씬'

극장이 곳곳에서 시름 하고 있다. 극장의 잇따른 휴관과 폐관이 지금처럼 영화 산업 전반에 걸쳐 이슈화가 된 사례가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극장의 존립에 관한 문제가 2000년대 초중반에 도래한 멀티플렉스의 시대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단관 극장들 혹은 재정 문제에 허덕이는 지역의 군소 독립 영화 상영관들 정도에 국한된 사안으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강타한 정국에서 극장 운영 전반에 대한 문제 또한 크게 불거졌다. 아트하우스 브랜딩을 통해 영화 산업 전반에 손을 뻗은 멀티플렉스까지 직격타를 입고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립영화 제작, 배급, 상영에 큰 중추를 견인해왔던 KT&G 상상마당까지 영화사업부가 해체되고 직원들을 전원 정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극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문뜩 생각한다. <라스트 씬>은 남포동에서 출발하여 대연동의 가람아트홀에 둥지를 틀며 독립영화들을 상영해왔던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나날들을 기록한다.

영화는 2018년 1월 31일 휴관에 돌입하기 직전 한 달간의 국도극장부터 2016년 2월에 일 년 여간 잠정 휴관하게 되었던 강릉 신영극장, 서울의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광주극장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독립 상영관들을 담는다.

<라스트 씬>이 눈길을 끄는 지점은 문화 정책의 구조적인 문제를 겨냥하기보다 관객의 존재를 조명한다는 점이다. 극장을 가꾸는 사람들을 나지막이 품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극장의 관계자들은 극장을 존속케 하는 힘은 관객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한다.

국도예술관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관객으로서 자신이 국도예술관으로 향했던 이유를 말하면서, 특정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기보다는 극장에 가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는 일종의 보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극장을 고집했던 내 이유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극장이 관람 경험을 제공하는 최적의 장소일 수 있다. 하지만 극장을 가게 만든 주된 원동력은 아니었던 듯하다.

<br>

영화는 극장에서 비로소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피며 극장의 물리적 기능을 예찬하는 극장주의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수한 환경에서 관람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내게 실용적으로 기능했다면, 유약한 집중력을 잡아 두고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점이었다. 산만한 관객으로서 영화와 친숙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극장이기도 했으니까.

한편 지정 좌석이 없는 극장에서 자리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에게 최적의 자리를 찾아다녔던 국도예술관의 관객들처럼, 나 역시도 광주극장 상영관 내부의 좌석들을 수없이 옮겨가며 드나들었다.

공간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행동이 안도감을 주기도 했고, 무심코 앉은 좌석에서 영화에 걷잡을 수 없이 매혹되기도 했으며, 최적의 숙면 장소로 기능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한 명의 관객으로 드나들던 극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오가는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가까워지며 자연스레 하나의 생활 터전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왜 영화 혹은 극장이며 이들은 무엇인가 식의 거대한 질문에는 예나 지금이나 멋들어진 답을 하기 어렵다.  별 대답에 거창한 수사를 동원할 때 되레 민망해지곤 하니까.

영화를 보러 극장을 가려면서도 때론 극장을 가기 위해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어느 순간 영화를 본다는 것과 극장을 간다는 것을 상관 관계로 설명하려 하는 드는 것도 무의미해곤 하니까. 그렇게 극장을 간다는 행위는 어느새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든 습관처럼 자리하게 되었다.

극장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곰곰이 되짚어본다. 특정 극장이 남아있길 소망하면서도, 인고 속에서도 꿋꿋이 생존한 과거의 유물로만 이야기한다면 대상을 추억으로만 보아내려는 시선에 머무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극장을 과거의 역사가 담긴 공간으로 낭만화하는 것은 자칫 특정한 장소를 기억 속의 존재로 박제하는 시각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

극장의 존속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발자취만을 좇는 태도에 자족하는 것을 넘어 현재, 그리고 앞으로 쓰여야 할 기록에 주목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라스트 씬>에서 극장 관계자들은 관객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아쉬움을 사뭇 털어놓는다. 영원히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는 말을 고정 멘트처럼 하는 사람들이 왜 정작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찾아주지 않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한다는 인디스페이스.

극장을 평범하게 유지하는 것조차 투쟁의 산물이며 쉽게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아직 국도가 있냐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나쁘다는 국도예술관의 영사 김형운 팀장.

본인에겐 추억이 아니고 현재임에도 사람들이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마치 자신이 추억 속에 있는 사람처럼 비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정진아 프로그래머.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자니 <광주극장> 앞을 지나가면서 이 공간이 아직도 존재하는 사실 자체에 놀라면서 여전히 상영하냐는 식으로 무심하게 말을 보태는 인파가 절로 떠오른다.

그런 측면에서 극장에 서린 기억을 막연히 소환하는 것과는 얼마간 거리를 두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기억이라는 장치를 구태여 끄집어내 작동시켜 보곤 한다.

극장이라는 공간을 상기하게 해주었던 순간들이 머릿속 한 자락에서 교차 상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극장을 다룬 어떤 영화들을 떠올리다 불현듯 연상 작용이 일어난다. 서울 변두리의 소극장과 폐관을 하루 앞둔 복화극장에서 근무하는 매표원의 일상을 그리는 두 편의 영화, 임순례의 <우중산책>(1994)과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2003)이 뇌리를 스쳐 간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축축한 날씨를 고스란히 머금은 듯한 이 영화들에서 극장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상 속 고독한 활동을 지속하는 자들의 터전처럼 다가온다.

영화들을 통해 극장과 사람을 상상하던 와중에, 차이밍량이 내한하여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던 광주극장에서 <안녕, 용문객잔>을 관람했던 기억이 덧대어 재생된다. 여기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극장 풍경에서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마주했던 시간이 절로 겹치기도 한다.

그렇게 극장에 대한 일련의 영화들을 떠올리다가 내가 실제로 발을 디뎠던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어떤 이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반추해보게 된다.

임순례의 <우중산책>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

극장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각인되었는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간헐적으로 또는 주기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곳, 혹자에게는 몸담은 일터로서, 어떤 이에겐 하나의 추억을 품은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내겐 오고 가는 행위를 무심코 반복하는 와중에, 이들이 모이고 쌓여 생성된 하나의 습관이 뿌리내린 곳이 극장이었던 셈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극심한 변화가 도래한 시점에서 극장 생태계 역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와중에 극장을 배회하던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조치가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극장의 존립을 위해 부단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의 기억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꿈을 꾸면서.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부산 지역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설립 추진위원회 일원들과 함께 영화문화협동조합 씨네포크를 창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은 2017년 3월에 재개관하여 운영중이다.

 광주극장은 100주년이 되는 2035년을 상상한다. <라스트 씬>이 공개되었던 2019년 12월 이후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드리운 현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미지의 관객을 상상하면서 그들을 기다리는 극장을 지탱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들일지라도.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