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공명을 통해 감동을 자아내는 시들에 대한 에세이

2020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된 고재종 시인의 시에세이집이다.

책을 펼치면 '작가의 말'에 있는 이인성 소설가와 황지우 시인의 문답 내용이 흥미롭다. “시의 길, 시의 미래는 어떻겠느냐?”라는 이인성 소설가의 질문에 황지우 시인은 “이제 귀족주의를 걷겠죠.”라고 대답한다.

고재종 시인의 시에세이 '시간의 말' 표지그림.
고재종 시인의 시에세이 '시간의 말' 표지그림.

서로 독해할 수준의 의식을 가진 몇몇 시인들이 서로의 시집을 읽어 주는 정도의 처지가 될 것이라고는 순수 시인의 자조적이고 고투 어린 이 진단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다.

문화의 메인과 서브의 경계가 무너지고, 팝 예술과 팝 문화가 대중에게 강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요사이 시를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는 고재종 시인의 넋두리 같은 말도 납득이 간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지상의 보석 같은 시”를 읽는다. “대쪽을 깎아 살에 피를 새기는 심정”으로 몇 줄의 시도 쓴다.

이번에 출간된 『시간의 말』(문학들 刊)은 인식의 깨달음과 충격을 주고, 감각의 쇄신과 사유에 있어서의 성찰을 나누고, 무엇보다도 타인과의 공명을 통해 감동을 자아내는 시들을 읽으며 여러 잡지에 소개하고 강의한 원고를 기초로 하여 엮었다.

제1부에서는 문태준 황지우 송재학 김기택 고재종 오규원 김춘수 기형도 강은교 정호승 김종삼 박형준 천양희 최승호 안도현 이진명 손택수 등의 시를, 제2부에서는 이시영 김애숙 신덕룡 이진명 김혜순 안도현 김병호 신철규 조은 김중일 장옥관 김춘수 장석남 최영철 고재종 오태환의 시를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신용목 김경옥 허연 김규성 조용미 조원규 장철문 심진숙 전결 김명인 천양희 기형도 박서원 서정주 백석의 시를 읽는다.

마지막 4부에서는 이시영 서정춘 우대식 정현종 김용택 정일근 장석남 정수자 이수익 최정례 김사인 고형렬 천상병 최두석 이선영 오탁번 김준태 이윤학 김종길 박성우 정희성 김석윤 나희덕 정진규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고재종 시인.
고재종 시인.

고재종 시인이 발굴한 이들의 시는 “사적 넋두리에 가까운 자기 변설로 요란한 시들, 현란한 이미지나 철학적 의장을 한 판타지 시들, 모국어를 능멸하는 혼종·착종·도착의 언어들이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난무하고 있”는 오늘날의 시단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대답하기가 끔찍할지라도 거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고재종 시인이 생각하는 시적 상상력의 전개 과정에 “생사성식(生死性食) 곧 노동의 고뇌와 사랑의 황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묻고 노래를 부르는 시들이다.

1957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다』 등과 시론집 『주옥시편』을 펴냈으며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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