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톡톡] '그녀를 아시나요...경계를 횡단하는 여자' 고 신은정 감독
[영화톡톡] '그녀를 아시나요...경계를 횡단하는 여자' 고 신은정 감독
  • 정주미 시민기자
  • 승인 2020.12.0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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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사랑했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당당한 고인"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

2012년 11월, 하나의 부고 기사가 떴다.

"하버드 이면 다룬 <베리타스> 신은정 감독 사망-미국서 심장마비로 사망...광주 인권영화제 등 추모 모임 구성“

'광주의 딸'이라 불리던 故 신은정 감독. 그녀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은 광주지역 영상독립영화 감독들과 그녀의 지인들에겐 커다란 슬픔이 아닐 수 없었다.

전남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결혼과 함께 2005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KBC광주방송, KBS광주총국에서 10여년 간 방송작가로 일하며 낮은 목소리를 담아내려 노력했고 지역사회 문제 등을 통찰력 있게 짚어내는 실력 있는 작가였으며 2000년대 초반 '광주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며 여러 해 동안 광주지역 영상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그녀의 지인들은 말한다.

고 신은정 감독.
고 신은정 감독.

그녀는 자신을 '경계를 횡단하는 여자'라고 칭하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했으며 영화를 통해 '성역 없는 비판'을 했다.

남편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5.18에 관한 연구자)를 처음 봤을 때 “양키 고 홈”이라고 소리쳤을 만큼 당찼던 그녀, 이제는 그녀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오늘 그녀가 생전에 남긴 두 작품, <광주항쟁의 유산>, <베리타스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소개하려 한다.

1980년, 전 세계에 광주의 실상을 알리려 했던 위르켄 힌즈페터가 있었다면 2010년에는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외국인에게 들려주려한 신은정이 있었다.

“탕!”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하는 영화 <광주항쟁의 유산>은 ‘광주민중항쟁 30주년 기념’ 2010년 故 신은정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518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그때의 실상과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설파하는 ‘518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해설서와 같은 영화다.

올해 5월 광주독립영화관 기획전인 ‘518 40주기 특별전’과 이번 11월에 개최한 ‘11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영화는 한 미국인(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영어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당시의 영상과 사진으로 러닝 타임 10분 20초를 꽉 채운다.

마치 추억의 ‘대한뉴스’를 연상케하는 영화는 뉴스 릴(news reel)과 같은 영상 매거진 형식을 띄며 군더더기 없이 1979년부터 1997년 동안 5.18 관련 역사적 기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979년 10월 16일~ 20일 부마항쟁,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 전두환 그리고 광주.

영화 광주항쟁의 유산.
영화 광주항쟁의 유산.

영화는 '광주'라는 테마를 봉기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Uprising), 해방 도시(The Liberated City), 마지막 싸움(The Final Battle) 으로 나누어 5월 17일~21일, 5월 22일~26일, 그리고 5월 27일을 당시의 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그날 이후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 (전두환 정부 수립, 1987년 6월 항쟁, 1988년 국회 첫 광주 청문회, 1996년 전두환·노태우 투옥, 1997년 국립 5.18묘지 개원)을 순차적으로 당시의 사진들과 영상을 통해 영어 자막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큰 여운을 남기는 자막.

Those 10 days of the Gwangju Uprising changed the country’s direction(그 열흘 동안의 광주항쟁은 나라의 방향을 바꾸었다)(이하 필자 역)

After spilling Gwangju people’s blood, South Korea finally achieved democracy(광주 사람들의 피로 인해 대한민국은 마침내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엔딩신인 위의 자막은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우리가 1980년 오월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하는 이유, 그 장엄하고 숭고한 '이유'를 말하고자 했음은 아닌지.

아홉 살 때 5.18을 경험하고 중학교 3학년 때 6월 항쟁을 겪은 신은정 감독, 그녀는 대한민국의 항쟁의 역사와 함께 했으며 그 역사의 소용돌이와 뒤섞인 그녀의 열정은 광주항쟁의 정신을 알리는 첫 영화 <광주항쟁의 유산>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써 과감한 첫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영화 '광주항쟁의 유산'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표지그림.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표지그림.

세계 최초로 하버드 대학의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고발한 다큐멘터리 <베리타스(VERIT$)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제가 한국에 와서 잠깐 영어 에세이를 가르쳤는데 그 중 한 아이 꿈이 하버드를 가는 것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이였는데 (…) 근데 그 아이에게 하버드가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썩 좋은 대학은 아니야라는 이런 이야기를 초딩학교 6학년한테 해줄 수는 없잖아요. (…) 한국 사회가 명문대를 향한 질주가 이 정도로 심각했는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모두가 최고를 향해서 달려가는 맹목적 질주를 조금은 멈춰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제 스스로의 호기심이 더 컸어요. 하버드가 제가 가서 보니까 세계를 움직이는 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하버드가 오늘날의 제국이 되기까지 역사적 궤적들을 개인적으로도 좀 추적해 보고싶다라는 생각이 있었구요. (…) 첫 작품을 어떤 작품으로 할 것인가 고민할 때 하버드가 순식간에 떠오르더라구요. "(영화 <베리스타를 찾아서 2014> 중 신은정 감독 인터뷰 중에서, 필자 발췌>)”

신은정 감독이 2011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베리타스(VERIT$)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은 세계 최초 하버드 대학의 어두운 역사를 조명, 비판한 작품으로 평단에 호평을 받아 ‘2011 뉴욕국제독립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베리타스’는 하버드 대학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으로 라틴어로 ‘진리, 진실’을 뜻한다. “하버드는 도서관을 갖춘 헤지펀드”라고 일침을 가했던 그녀는 문장 VERITAS의 ‘S’자를 달러 표시‘ $’로 바꿔 지성의 상징으로 통하는 하버드 대학이 미국 주류사회의 지배 논리하에 하버드 인맥을 통한 세계 지배를 영화를 통해 날카롭게 파헤쳤다.

베리타스: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영화는 하버드의 역사와 하버드를 나온 저명인들과 시대의 지성인인 MIT 노암 촘스키 교수의 인터뷰 등을 담아 우리가 알고 있는 잘못된 하버드의 신화를 절절히 고발한다.

그러면서 영화 <베리타스>는 하버드 대학 이면의 고발과 동시에 그녀가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처음 의문을 가진 ‘명문대를 행한 질주, 일류만을 쫓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故신은정 감독이 남긴 두 작품은 그녀의 당찬 성격과 비판 의식, 그녀만이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소명,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그러한 그녀가 지금 이 땅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녀의 영화와 그녀에 관한 기사, 추모문집을 읽으면서 그녀와 나의 연결 고리 하나를 찾았다. 그녀처럼 나 또한 좋아했던 그곳, 한번은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그곳 ‘포플레이’. 오늘같이 스산한 초겨울, 그녀가 떠난 11월도 이러했겠지?

고 신은정 감독 추모집.
고 신은정 감독 추모집.

이 원고를 넘기는 오늘, 그곳에 가서 그녀가 앉았을 법한 그 자리에서 그녀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보드카 한잔 해야겠다. 그녀와 함께 인 것처럼.

끝으로 한 광주독립영화감독이 그녀를 추모하며 쓴 글을 옮기며 이만 펜을 놓는다.

"장래가 더욱 기대되는 다큐멘터리감독 신은정은 그녀를 사랑하는 지인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끝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광주를 사랑했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당당한 고인의 모습은 그녀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그녀가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었던 사랑을 이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돌려줘야 하겠습니다. 그녀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마음을 모아 슬픔을 딛고 지혜롭게 그녀를 보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광식Cine-슬·비>는 광주에서 시끄러운 영화활동을 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영화모임 중 '슬기로운 비평생활'이라는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 영화연구비평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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