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톡톡] 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한 그릇, 한 모금'
[영화 톡톡] 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한 그릇, 한 모금'
  • 정찬혁 시민기자
  • 승인 2020.11.21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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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 - 조재형 감독의 '한그릇, 한 모금'

5.18을 다루는 많은 영화들이 있다.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등 5.18을 주제로 삼은 많은 영화들이 신군부의 탄압으로 인해 말할 수 없었던 5. 18을 충실하게 재현해냈다.

영화는 5.18이라는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5.18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공수부대원의 시점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는 재현의 기능을 통해서 침묵 속에 묶여 있었던 그날의 사건을 오늘로 소환한다조재형 감독 또한 5.18을 영화로 재현한 영화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그날>에서 신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아래 망가지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려내었으며, <맛의 기억>을 통해 5.18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가 무엇인지 표현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조재형 감독은 5. 18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소통에 이르는 과정을 단편 <한 그릇, 한 모금>에서 보여준다.

<한 그릇, 한 모금>은 주인공 혜은의 꿈에서 출발한다. 혜은은 꿈속에서 낯설고 섬뜩한 숲 속에서 헤매고 있다. 탈출구를 찾지 못해 당황하던 혜은은 엄마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식은땀을 흘리며 버스에서 내린 혜은은 이름 모를 한 사찰로 향한다. 예민하고 까칠한 분위기를 풍기는 혜은의 이미지와 한적한 사찰은 대비를 이루어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감은 혜은이 엄마와 만나면서 분출된다. 혜은은 그곳에서 엄마를 만나고, 곧바로 엄마에게 다짜고짜 돈을 요구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엄마는 수화로 답변하지만 혜은은 이를 무시하다. 영화는 두 인물이 어째서 이렇게 갈등하는지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다.

혜은이 왜 돈이 필요한지, 혜은의 엄마는 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왜 엄마는 사찰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배경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더욱이 까칠한 혜은과 말없이 다정한 태도로 일관하는 엄마의 모습은 대비를 이루어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키운다.

하지만 영화는 두 인물의 과거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고 두 인물이 현재 느끼고 있는 아픔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영화의 중반부에 혜은은 갑자기 알 수 없는 복통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이때 혜은의 시선에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이 들어온다.

고통으로 자지러지는 엄마는 신음하며 고통을 삼키고만 있다. 고통스러운 배를 움켜쥔 혜은은 엄마를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아직까지 혜은은 엄마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혜은은 엄마의 아픔을 발견하면서 엄마와 자신의 연결고리를 발견한다. 모녀는 고통의 비밀에 대해 서로 말하지 않지만 몸으로 느끼는 아픔이라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을 갖는다.

따라서 혜은과 엄마에게 각자가 가진 고통은 서로를 매개하는 접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물에 빠진 혜은을 구해내면서 혜은은 엄마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엄마가 말하지 못하는 고통은 5.18을 현실로 경험했던 세대가 받아야했던 국가에 의한 강요된 침묵을 상기시킨다. 신군부의 탄압으로 가해자에게 피해를 요구할 수 조차 없었던 5.18 당시의 피해자들은 영화 속에 엄마의 모습과 중첩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엄마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삭힌다. 그러한 엄마를 바라보는 혜은은 역시 괴롭다. 혜은은 아픈 엄마를 바라보는 고통과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한다는 두 가지 고통을 한몸에 단고 있다.

결국 각자가 가진 고통으로 인해 대화할 수 없는 혜은은 엄마와 멀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가진 아픔은 두 인물을 화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각자가 가진 아픔의 이유는 다르지만 서로에게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기 떄문이다.

엄마는 정신을 잃은 혜은을 돌보면서 혜은이 품고 있던 고통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혜은은 자신을 정성껏 돌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비밀을 들켰다는 수치심 보다는 엄마의 진심을 느낀다.

마침내 변화한 두 인물의 관계는 밥을 먹는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엄마의 밥상을 거부하던 혜은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린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혜은의 표정에 긴장은 사라지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두 모녀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입에 음식을 떠 넣어준다. 엄마는 자신이 알아버린 혜은의 비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혜은 또한 비밀을 들켰다는 기색이 없이 두 인물은 한 밥상에서 도란도란 밥을 먹는다.

이들이 서로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진심을 내보이는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인물은 서로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혜은과 엄마는 상대방이 가진 아픔의 나의 아픔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서로에게 진심을 내보일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조재형 감독이 <한 그릇, 한 모금>에서 인물의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엄마와 혜은이 가진 말하지 못할 고통은 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줌으로써 전달될 수 있다.

감독이 고통의 전달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일상의 공유이다. 5.18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가 한 밥상에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일상을 보낼 때 두 세대는 말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조재형 감독은 <한 그릇, 한 모금>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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