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톡톡]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영화 톡톡]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 임의현 시민기자
  • 승인 2020.11.18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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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성영화제 상영작..."우리는 어떻게 가족이 될까"
국적과 세대가 다른 소녀가 할머니의 가족이야기
"삶이 퍽퍽하게 흘러도 잡아야 하는 희망이 있다.”

지난 11월 10일부터 15일까지 제11회 광주여성영화제가 개최되었다.

전체 50여 편의 상영작 중 [단편초청 1]에서는 <호랑이와 소>, <수강신청>, <엄마, 영숙>, <스타렉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섹션의 마지막 상영작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2020)는 국적과 세대가 다른 소녀와 할머니가 가족으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한국인 할머니 ‘정연’은 일본으로 시집 온 딸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 왔지만 공항에는 딸 대신 일본인 손녀 ‘안’이 기다리고 있다.

안은 정연에게 퉁명스럽고 예의 없이 행동하고, 그런 태도가 못마땅한 정연은 무시해 버리려는 듯 창밖만 응시한다.

영화와 동명의 노래 첫 소절처럼 ‘구름 위에 뜬 기분’으로 집을 향해 걷는 정연의 “왜 이렇게 멀어.”라는 말은 거리가 아니라 낯선 상황 속 이 관계를 뜻하는 것처럼 들린다.

안은 트와이스 콘서트를 가기 위한 용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연과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멤버와 할머니의 이름이 동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로 먼저 대화를 시도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인물 간 심리적 거리감이 좁혀진 장면이지만 K-POP, 아이돌 문화를 장치 삼아 국가 간의 교류를 녹여낸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일본영화대학 학생들과 합작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영화 초반과 달리 가까워 보이던 두 사람은 숨겨둔 속마음으로 인해 결국 멀어진다. 정연은 “나야말로 내 딸을 뺏긴 거라고. 내 딸을 너한테 양보한 거야.”라고 소리친 뒤 밖으로 나가버리고 안은 ‘미월’의 전화를 받은 뒤 벌떡 일어나 정연을 찾으러 나간다. 이 장면 속 안은 다급하지만 꽤나 간절해 보인다.
 

둘은 강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다시 만난다. 먼저 말을 꺼낸 이는 안이다. 딱히 미워할 사람이 없어서 아줌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탓에 아빠가 할머니한테서 딸을 뺏어 왔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다고 이야기한다.

이어 정연도 한국어로 말을 꺼낸다.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뒤 딸까지 뺏겨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나또한 너무 내 생각만 했다고.

안은 정연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냥 미안하다는 뜻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생긋 웃는다.

정지된 채로 두 사람의 앞모습을 비추던 카메라는 늦은 여름 풍경 속에 있었던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비추고, 콧노래로 시작된 흥얼거림은 엔딩 크레딧까지 길게 삽입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고나면 저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미워하는 척 했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했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진짜 미워서가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스스로를 미워한 적이 많았다. 불현듯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아마 늦었을 거라는 생각에 포기한 적이, 실제로 말한 적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인지 안의 태도에 깊이 감응했다. 까맣고 깊은 눈동자로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소녀의 모습은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를 맺어갈 때 필요한 자질이 용기라고 생각한다. 늘 용기가 부족해 도망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용기란 재주와도 같은 것이다. 안을 보면서 또 한 번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혼인·혈연으로 이뤄진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가족이 되어갈 수 있는지’라는 질문에 원초적이지만 확실한 선택지를 갖고 풀어가는 작품이다.
 

이건 언어가 통한다 해도 어려운 일인데,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름답고 희망적이다.

비록 서로 다른 언어는 충돌하며 한계에 부딪히지만 결론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공감하고, 끝내 이해하게 된다.

정돈된 언어가 아닌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진심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꺼내 보이는 용기, 회피하지 않겠다는 다짐, 솔직한 태도로 두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된다.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김소형 감독의 말처럼 “삶이 퍽퍽하게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잡아야 하는 희망이 있다.”고 나또한 믿는다.

단순한 진심이 가진 희망은 언제 발견되어도 늦지 않다. 안과 정연처럼 삐걱거린대도 언젠가 충분히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마 늦지 않았을 것이다.


**임의현님은 시끄러운 영화활동을 하려는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에서 청년인턴으로 일하면서 '광식cine(광식씨네)'와  
'슬기로운 비평생활' 모임에서 영화 연구•비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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