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수상작가 범현이 소설가 첫 창작집
화가들의 비극적 삶을 소설로 그려

빈곤과 재능은 예술가의 영원한 비애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실력을 갖추긴 어렵고 명성을 얻기도 어렵다.

범현이 소설가의 첫 창작집 『여섯 번째는 파란』(문학들 출간)에 담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예술을 잇몸으로 악물고 빈곤과 싸운다.

범현이 첫 소설집 '여섯 번째는 파란' 표지 그림. ⓒ문학들 제공
범현이 첫 소설집 '여섯 번째는 파란' 표지 그림. ⓒ문학들 제공

이 책에 실린 단편 대부분이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천형(天刑)을 타고난 작가의 이야기(「목포의 일우」)를 비롯해 그림과 떨어져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 포기할 수 없는 우울한 상황(「여섯 번째는 파란」, 「안나는 없다」), 넓게는 그림판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암묵적이고 비극적인 상황(「뫼비우스의 띠」, 「소리」)을, 또는 독재 타도를 위해 걸개그림 작업과 포스터 작업을 하고 시내 전역에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다니는 스무 살의 피 끓는 청춘(「가죽가방」) 등을 글로 그렸다.

2019년 목포문학상을 수상한 「목포의 일우」는 남종산수화의 대가 남농(南農) 허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치(小癡)와 미산(米山) 잇는 가계에서 태어났다. 그림을 팔자로 타고난 이들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어찌 그림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아버지 미산으로부터 가난한 화가의 길을 가지 마라는 유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림을 그린다.

어렸을 때부터 사무쳤던 가난에 자신을 내던진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과 스물여덟의 나이에 시작된 골습(骨濕)도 그의 열정을 막아낼 수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남종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남종화였다. 길고 긴 통증과 창작의 번민 속에서 그림의 신에게 다리 하나를 제물로 바쳐 마침내 신남화풍을 그려 내는 데 성공한다.

그 작품이 바로 「목포의 일우」다. “나의 일부를 잘라 내어도 끝끝내 예술을 고집하는 존재가 바로 예술가다. 예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타협이야말로 예술가의 윤리이자 자유의 시작이다.” “범현이에게 예술가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김주선 문학평론가)

표제작 「여섯 번째는 파란」은 아주 고통스럽고 역설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처지를 견뎌 내는 여성의 이야기다.

문중의 족장이 되면서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 남편과 미술관 일을 그만두려는 딸을 둔 화자는 가계의 생계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

미대에 들어가 코피가 날 정도로 그림을 그렸지만 소질이 없어 매번 혹평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림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글마저도 흐름이 막힐 때면 판화가이자 타투이스트인 친구 은종을 찾아간다. 은종은 마치 막힌 혈을 뚫듯 화자의 몸에 나비 타투를 새긴다.

딸아이를 낳는 날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은종은 생계를 위해 판화를 그만두고 타투를 선택했다. 과연 어느 삶이 더 나은 삶일까. 택할 수는 없다.

범현이 문학전문기자(오월미술관장).
범현이 문학전문기자(오월미술관장).

고통의 질적 수준은 증명할 수가 없다. 다만 앞서 「목포의 일우」에서 남농의 선택을 보았듯이, 범현이 소설가가 어떤 모습을 그릴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다. 작가는 절대 예술을 놓지 않을 것이다.

두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지만 예술에 대한 순정이나 섬세함, 고고한 정신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범현이 작가는 이 작품집을 통해 “현대사회의 각종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미친 세상에 저항할 감각을 만들어 내는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범현이 소설가는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전시서평과 전시기획 전문가이다. 오월미술관을 운영 중이며 예술문화연구회 대표로 민중미술 아카이브에 전력을 쏟고 있다.

2016년 <무등일보>로 등단했으며 2018년 100인의 작업실 탐방 에세이 『글이된 그림들』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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