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미운 자를 위한 기도
[이기명 칼럼] 미운 자를 위한 기도
  •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 승인 2020.07.1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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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용서가 아닌가

■이 세상 최악의 인연

존경받던 시민운동가인 고 박원순 시장이 4년 동안 비서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끈질긴 추행이다. 죽고 싶도록 진저리치며 추행을 당한 비서는 박 전 시장을 고소했다.

무서운 인내다. 4년 동안 추행하고 당한 두 사람의 인연은 하늘도 알아줄 악연이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사실이라니 어쩌는가.

글을 좀 쓰다 보니 속담을 많이 인용하는 편이다. 속담을 인용하면서 속담의 심오한 의미에 대해 우리 선인들의 지혜에 무릎을 친다.

‘미워하는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한다. 택도 없는 소리다. 두들겨 패도 시원치 않은데 떡을 주라니. 예수님 말씀이라도 노땡큐 다. 이런 속담이 왜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을까. 인간만의 심성 때문이다.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성자들이나 할 수 있는 행위를 사람들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막상 자신은 실행하지 못한다.

내게도 도저히 용서 못 할 인간이 있지만 어쩌랴. 그저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담아두고 원망을 할 뿐이다. 슬프고 무섭다.

■미움도 미음 나름이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SNS 갈무리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SNS 갈무리

우리는 남북이 갈려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북이 갈리고 골육상쟁(骨肉相爭)의 처참한 비극 속에서 죽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

전쟁 중에 전사한 우리 형제들의 모습이 유골로 나타난다. 현충원에 가면 전사한 그 많은 형제, 그들을 그리워하는 부모들의 눈물은 아마 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나마 묘비라고 쓰다듬으며 눈물짓고 그리워하는 것은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를 혈육을 그리워하는 유족들보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인가. 총도 제대로 쏠지 모르면서 끌려가 총 한 방 쏘지도 못하고 전사한 경우도 있단다.

총알이 다 발사됐는데 선임하사한테 총알이 안 나간다고 달려온 어린 병사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전쟁에서 전사한 우리 형제는 가엾은 희생자다. 그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죽이고 죽었다. 그들은 서로가 원수인가.

미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버리지 못한다.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은 왜 인간에게 그토록 미묘한 감정을 주셨을까. 무슨 고약한 취미란 말인가. 서로 미워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광화문광장을 지나며 고 백선엽 대장을 기리는 수많은 시민을 보았다. 일본군과 함께 조국을 배신했다는 비난과 구국의 영웅이라는 찬양이 교차한다. 한 가지 동일한 것은 미움과 찬양이 인간의 가슴속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혜영·류호정 의원, 상식대로 살면 안 되는가

박원순 시장이 갔다. 나와는 가까운 사이였다. 그가 헌신적인 시민운동가인 것은 국민들이 안다. 이번에 그의 과(過)가 드러났다 해도 그의 공(功)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과를 아무리 질타한다 해도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그 난리들인가. 덮으라는 것이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장혜영·류호정이란 정의당의 젊은 비례대표 의원들을 이번에 알게 됐다. 우선 국회의원 이전에 상식인이 되라는 충고부터 보낸다. 그들은 박원순을 고소한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지하겠다며 빈소 방문 거부 의사를 밝혔다.

살아있는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말 못 하는 미물이 생명을 잃어도 가슴이 아프다는 분을 안다. 어느 스님은 이른 봄 새싹이 나올 때는 신발을 안 신는다.

새싹이 다칠까 걱정 때문이다.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박원순 시장의 살았을 때 행적을 많이 안다. 그는 32억을 기증했고 빚이 7억이나 되고 집도 없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국민이 다 아는 그대로다.

장혜영·류호정, 두 의원에게 묻는다. 정말 두 의원께서 조문을 가시면 2차 가해가 되는가. 조문을 안 가면 가해가 안 되는가. 당신에겐 어떤 이득이 오는가. 정치적 이해관계는 전혀 없는 행위인가.

빈소 방문이나 거부나 모두 그들의 마음이다.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거처럼 야단법석만 안 떨었으면 좋겠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다.

마음속으로 걸리는 게 있으면 속으로 조문도 하고 비난을 해도 된다. 제발 수선 좀 떨지 말라. 국민이 힘들다. 관 뚜껑 덮으면 다 끝나는 것이다.

■세상 살기가 무섭다

‘당신 길 가다가 이쁜 여자 지나간다고 쳐다보지 말아요. 아무리 어린애라도 귀엽다고 머리 쓰다듬지 말아요. 걸려들면 도리 없어요’

늙은 아내가 하는 소리다. 기가 막힌다. 그저 죽은 듯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살라는 말이다.

이제 과학이 발달해 사람의 마음도 찍는 기계가 나올지 모른다. 그럴 경우 예쁜 여자 곁에서 지나가는 남자들 마음을 모조리 찍어 본다면 어떨까. 이런 글을 끄적대고 있는 나도 한심의 극치고 빨리 관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역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자. 어떠신가. 박원순 사망과 관련해서 이러고저러고 말씀하시는 언론인과 정치평론가, 잘난 정치인들. 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주제넘은 짓이다.

무슨 말인지 아는가. 성인군자 행세 그만두란 말이다. 요조숙녀 천사 같은 소리 그만두란 말이다.

딱 죽으면 편한데 죽지 않고 산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정치를 해서 지금보다는 좋아지는 세상을 보고 싶고 조금이나마 거기에 힘을 보태자는 생각 때문이다.

함께 노력하자. 좀 나은 사람이 정치하기를 빌고 또 빈다. 함께 빌자. 미운 자에게 떡 하나 더 주자.

미워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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