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대해 정규 교육이 198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에 남긴 것은 ‘남침, 공산당, 동족상잔의 비극’ 정도다.

흔히들 6·25전쟁을 가리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해마다 6월이 되면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말이 난무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왜 6·25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인지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을 맞는 오늘, 6·25전쟁이 왜 동족상잔의 비극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파괴된 한강 다리.
1950년 6·25전쟁 당시 파괴된 한강 다리.

1910년 경술국치 후 수많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떠난다. 그들 중 일부는 만주로 가서 동북항일연군(모택동 계열)이 된다.

일부는 화북지역으로 가서 조선의용군이 된다. 이후 조선의용군은 팔로군과 합세하여 의용군(모택동 계열)으로 발전한다.

일부는 강남지역 즉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광복군(장개석 계열)이 된다. 당시의 조선 독립군은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모택동이나 장개석의 세력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대립한 국공내전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어쩔 수 없이 대립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동존상잔의 비극의 서막이었다. 당시 장개석의 국민당은 미국의 막강한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모택동의 공산당은 열세를 극복하고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국공내전과 같은 시기에 한반도에서도 내전이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한반도 전역에는 인민위원회라는 자치조직이 만들어져 조선인들 스스로 나라를 재건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광복 한 달 후 당시 오키나와에 근무하던 미 제24군단 사령관 하지(John Reed Hodge)는 맥아더의 명령을 받고 한반도에 입성해 미군정의 시작을 알렸다. 미군정은 한반도 내전의 근본적 원인이었다.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빨갱이로 몰아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한민당은 인민위원회가 빨갱이라는 편견을 조장했다.

특히 월남세력으로 조직된 서북청년회는 앞장서서 인민위원회를 탄압하며 동포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당시 서북청년회는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남한에서 사회적 기반을 잡기 위해 미군정의 앞잡이 노릇에 헌신했다.

여순사건과 제주 4·3항쟁도 인민위원회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미군정과 서북청년회에 저항하던 인민위원회의 세력들은 열세에 놓이자 산으로 도망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빨치산이 된다. 미군정 일당이 인민위원회를 탄압한 이유는 조선인들의 자주권을 빼앗아 남한을 식민지화하기 위함이었다.

미군정 일당이 남한에 가한 폭압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한으로 탱크를 보내어 6·25전쟁의 불씨를 당겼다.

당시 북한의 군대는 모택동 계열의 동북항일연군과 의용군에서 활약하던 조선의 독립군이 주축이었고, 남한 군대의 주축은 장개석 계열의 광복군에서 활약하던 조선의 독립군이었다.

6·25전쟁은 일본에게 빼앗긴 한반도를 되찾기 위해 타국에서 온갖 고난과 설움을 감수하며 36년간 함께 싸운 조선의 독립군들이 그토록 되찾길 염원하던 한반도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눈 사건이다. 그래서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정규 교육은 우리 세대에게 6·25전쟁을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정도로만 가르쳤다. 그럼으로써 정규 교육의 틀은 6·25전쟁을 ‘동아시아 30년 전쟁’의 일부로 파악하는 거시적 시선을 차단했다.

제국주의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1세기 동안 동아시아를 식민지배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미국이라는 우산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을 이어받아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장개석에 대한 지원과 남한에 미군정 수립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6·25전쟁에 있어서 김일성의 잘못은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6·25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고, 일본은 한반도에 전쟁물자를 팔아 재건에 성공했다.

그래서 6·25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이 만들어낸 죄악이다. 동족 간의 전쟁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죄이며, 전쟁을 초래한 당사자들은 이익을 취했다는 점에서 악이다.

죄악이라 해석했지만 6·25전쟁에 대한 통탄함은 감히 언어로 포획할 수 없을 것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7호(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