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전문]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견뎌내는 또 다른 청년들”
- 청년노동자 고 김재순 사망 관련 입장 -


2020년 5월 22일. 광주광역시 하남공단의 재활용사업장 ‘조선우드’에서 일하던 26살 청년노동자 김재순 씨가 홀로 작업 중 파쇄기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했다.

2016년엔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다 지하철에 치여 숨진 김 군이 있었고, 2018년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가 있었다.

또 한 번, 기업과 국가가 청년 노동자를 죽였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청년노동자의 죽음은 또 다른 청년들의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처럼 콱 부딪힌다. ‘나’ 또한 그의 죽음을 견디며 지금도 일하고 있는 청년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조선우드에서는 2014년에도 같은 사고가 있었고,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같은 사고가 반복되어 김재순 씨를 죽게 만든 것이다. 제대로 안전수칙을 지켰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같은 사고가 있었다면 더 철저히 지켰어야 했음에도 사업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6년 전 사고 이후 노동부는 단 한 번도 조선우드를 관리·감독하지 않았고, 예정된 참사처럼 김재순 씨는 목숨을 잃었다.

청년 노동자의 목숨은 무엇인가? 한 명이 죽으면 그 자리를 다른 이가 채우는, 부품처럼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정도의 것인가?

그가 죽던 새벽, 안전수칙을 지켜 2인 1조로 작업했더라면,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 난간을 설치했더라면, 손으로 작업하지 않도록 전용 공구를 지급했더라면.

그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고를 당하더라도 죽음에 이르진 않았을까? 그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안전 수칙들은 그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가 홀로 처참히 유명을 달리했을 순간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그랬듯, 2년 전의 김용균 씨와 4년 전 김 군이 그랬듯.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이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위험하고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그가 목숨을 잃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운이 나빠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죽음을 막지 않은 기업의 살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기업을 관리하고 처벌하지 않은 국가의 살인이다. 매번 일어나는 산재 사망. 하루에 몇 명씩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목숨은 어떤 값이기에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것인가.

구의역 김 군의 가방 속,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챙겨 넣은 컵라면 몇 개가 그의 유품이 되었다. 온몸의 기력을 써서 일하지만 끼니조차 챙겨주지 않는 일터였다. 언제, 어떻게 다치거나 죽을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일터에서 일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고 김용균 씨는 참사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 달라는 피켓을 들었다. 그의 죽음 이후, 수많은 청년들과 노동자들은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이 처참한 죽음을 홀로 맞이할 때, 오로지 효율과 이윤을 위해 운영하는 기업과 이를 방조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매년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가 2000여 명이라 하는데, 이를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지 않는다면 청년 노동자들은 계속 죽음의 한복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어떤 책임을 지더라도 죽은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최소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지키지 않은 기업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자식을 잃은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한 권리를 누려야 함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서 청년 노동자들은 높은 자리에서 떵떵거리는 기득권들과 같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기울어진 저울 끝에서 오늘도 위태롭게 일한다.

살기 위해 일한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가장 축복받고 보호받아야 마땅하지만, 가장 위험한 곳에 외로이 방치되어 지금도 일하고 있다.

이 땅에서 일하다 죽은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을 추모한다. 그리고 분노한다.

더는 청년들이 일하다 죽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청년노동자는 일하다 망가지면 바꿔버릴 수 있는 부품이 아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 일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

광주 청년민중당은 노동이 존중받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2020. 05. 28

광주 청년민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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