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그래피티 아티스트 이종배
[범현이의 작가탐방] 그래피티 아티스트 이종배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0.04.1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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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민들레꽃

TV드라마 ‘이태원클라쓰’가 떴다. 매주 금·토 늦은 시간이면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서 드라마에 집중한다.

그래피티에 대한 관심도 폭증이다. 광주시 동구, 인쇄골목 입구에 위치한 주차장도 핫플레이스가 된 지 몇 달째다. 존 레논의 얼굴이 건물 외벽에 그려진 후 부터이다.

이종배 그래피티 아티스트.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이종배 그래피티 아티스트.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며칠 밤 동안 후다닥 그려진 것으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의 대부분은 건물 외벽인 존 레논의 동그란 안경테에 머문다.

모두가 작가의 작품이다. 그래피티 아트는 벽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이다. 미국에선 1970년대 ‘거리 낙서’에서 시작돼 순식간에 확산됐다.

그래피티로 만들어진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제 자리에 남아서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찰라로 붙잡는 마력을 가졌다.

랩퍼에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변신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지만 군산을 거쳐서 현재 거주지는 광주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매달렸던 건 ‘춤’이었다. 그냥 좋았다.

작가는 “브레이크 댄스에 빠져들었던 것은 우연히 본 케이블TV의 흑인가수 MC해머 때문이었다. 한 번 본 잔상이었는데 곧잘 따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레코드사의 전속 댄서가 된 것이 스물한 살. 그룹 god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와 량현량하의 <춤이 뭐길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에서 청년문화의 장을 여는 행사를 할 때, 국회의사당에서 비보이 춤을 추었다. 우리나라 최초였다.

비보이로 활동했던 작가는 2006년 군산 서해대학 광고디자인과에 진학, 그래피티 아트에 발을 들였다. 그

래피티를 만난 건 힙합문화에서 당연한 과정이었다. 커스텀을 했다. 자동차나 트럭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다. 버스 등에 그려진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 맨 등이 커스텀의 일종이다.

몸에 녹아들던 그래피티는 한순간 전력을 다해 작가를 끌어당겼다. 친동생처럼 지내던 래퍼 후배의 죽음이었다.

작가는 “충격 그 자체였다. 삶의 의미가 순식간에 내게서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무엇을 해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밥을 먹다가 노래를 듣다가도 후배의 얼굴이 떠올랐다.”며 “누구라도 볼 수 있게, 아니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도록 얼굴을 그리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LOVE OUR LIVES_ 그래피티는 생명을 틔우는 일

어둡고 습한 곳을 찾아 나선다. 낡고 불편한 곳에 작가의 눈이 머문다. 두 손에 색색의 스프레이를 들고 희망을 분사한다.

낡은 벽 아래에는 작은 꽃을 그려 희망을 보여주고 불편한 장소에는 그곳에 알맞은 어떤 것으로 다정함을 이야기한다.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작가 역시 삶에 희망을 키워간다. 아이를 키우고 있으므로 더 밝은 세상을 향해가는 것이다.

전국을 누빈다. 원하는 곳이면 재고할 필요성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가방을 꾸린다. 드로잉 북에 스케치를 하면서도 손은 그려야 할 것들을 완성하고 있다.

거리의 청년들이 저항의 목소리로 써내려가던 스프레이 구호는 작가에 이르러 예술의 한 장르가 되었다.

사회적 목소리도 거침없이 낸다. 작가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한다.

세월호 아이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며 노란리본을 그렸고, 광주 충장로에는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벽화도 그렸다. 군산의 월명동에는 김구, 윤봉길,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 3인의 얼굴도 그렸다.

도산 안창호- 이종배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도산 안창호- 이종배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미국의 조지아 주에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그렸다.


작가는 “마침 3·1절 100주년을 맞아 미국행을 앞두고 2개월간 준비했다”면서 “우리나라의 진정한 영웅인 독립운동가, 그들의 강한 소울(soul), 숭고한 희생정신을 미국에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피티의 본거지인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

작가는 “자유롭고 개성 있는 애틀랜타의 작업 환경과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면서 “앞으로도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단발성이 아닌, 예술가의 흔적을 도시에 남길 수 있는 축제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작가의 좌우명은 ‘러브 아워 라이브즈(Love our lives)’다. 크루였던 친구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난 뒤에 스스로 가치관을 많이 바꾸었고, 재능기부를 시작했다.

친구가 무언으로 알려준 삶의 새로운 희망이자 기쁨이다. 어둡고 습한 곳, 작가의 스프레이 바람이 노란 민들레의 꽃을 피워낸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5호(2020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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