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성민우회, 9일 성명 발표 "21대 국회, 낙태죄 법안 마련" 주장

논평 [전문]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1년,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가 필요하다

※ ‘낙태’는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의미로 단어자체가 부정적이며,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함. 본문에서 사용한 ‘낙태죄’, ‘인공임신중절’은 법률적인 용어를 그대로 차용함.

작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에 명시된 ‘낙태죄’ 처벌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해석하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임신중지가 여성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인정하고, ‘여성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책임을 다 하라는 엄중한 판결이었다.

ⓒ광주여성민우회 제공
ⓒ광주여성민우회 제공

그러나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된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새로운 법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논의가 미뤄지고 있는 사이 수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고비용·위험 임신중지를 결정하거나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여 출산을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혼자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실제로 지난 2월, 광주지역에서 한 여성이 출산이후 아이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를 밖으로 던지겠다”고 말했으나 “마음대로 하라”는 무책임한 말을 한 사례가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장실서 낳은 아이 숨지게 한 비정한 20대 엄마 구속(연합뉴스, 2020-04-01)”, “PC방 화장실서 신생아 던져 살해한 '인면수심' 20대 母(이데일리, 2020-02-06)”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임신·출산에 대한 책임이 있는 남성은 삭제한 채 여성의 도덕성을 비난했다.

임신·임신중지·출산·양육의 문제는 개인 여성의 도덕성을 비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도덕성을 비난한다고 하여 통제되거나 관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결정적으로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임신과 출산은 지금까지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조절되어왔으며, 우생학적 관점에서 선별되어 왔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단순히 ‘출산의 도구’로 취급받을 뿐 재생산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반면 남성의 경우 원치 않는 임신 또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지에 대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배우자 동의 항목’에 의해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여성을 처벌까지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다.

실제로 배우자 동의 항목에 의해 임신중지를 한 여성이 상대남성에 의해 협박을 받은 사례가 발생했다. 이러한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법은 남성을 관리자 입장에 놓고, 당연한 권리로서 존재하게 만들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해 오는 4월, 총선을 통해 구성될 21대 국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이후의 법안을 마련하는데 총력을 다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법안이 마련되기 전이라도 적극적으로 유산유도제를 도입하도록 해야 한다. 유산유도제는 2005년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정한 필수의약품이며, 이미 67개국에서 널리 사용 중인 의약품이다.

초기 임신에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통해서만 임신중지가 가능한 것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하여 접근성을 떨어트리며, 후유증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불합리하다.

또한 현행법상 허용사유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임신중지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적 기술이 발전하기 어려웠고, 교육과정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임신중지를 위해 의료인으로서 갖춰야할 기본적인 태도와 최신 의료정보, 기술에 대한 교육 및 임신중지 후 상담 및 지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경제적 취약 계층 등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의료보험적용도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합법적으로 임신중지가 가능한 국가에서는 보험적용을 통해 비용으로 인한 접근성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이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하지 못해서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며, 여성의 건강권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측면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끝으로 성에 대한 가치관과 권리, 평등한 의사소통, 피임 방법 등을 다룬 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2015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교성교육표준안 운영 시 유의사항’을 보면, ‘학생의 성 행동은 금욕을 기본으로 가르치되 책임 있는 성 행동, 나아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한 피임방법 등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지도한다’고 나와 있다.

학생의 성은 여전히 금기시 되어 있으며, 청소년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오히려 폭력적이고 왜곡된 성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게 된다.

예방의 측면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2020년 4월 9일

광주여성민우회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