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여 년 만에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설 박 작가를 만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광주 남구 월산동에 위치한 작업실에 들어서니 바닥에는 먹을 먹인 화선지가 쌓여있고, 벽에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메모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으로, 창문에 붙은 작품들이 투명해지며 먹의 농담이 드러난다.

설박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설박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대학에 가서 한국화의 전통적 방법으로 작업하며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던 차에, 2007년 전후로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는 한국화의 새로운 바람이 분다.

기존 산수화의 틀을 깨고 싶었던 그는 2009년부터 ‘콜라주 산수’라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우연성 - 해체 - 재구성

그의 작업은 화선지에 먹을 먹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초기에 사용했던 색도 모두 빼고 오직 먹의 농담으로만 작업하고 있다. 작업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화선지를 펼쳐놓고 먹물을 부어서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먹물이 화선지에 스며들고 마르면서 생긴 의도치 않은 먹의 번짐과 자연스러운 먹의 농담으로 생긴 무늬 등 우연적 효과가 만들어진다.

먹을 염색한 화선지를 미리 많이 만들어놓고, 이제 원하는 부분을 골라 찢는다.

그는 화선지를 찢으며 먹의 농담으로 생긴 번짐과 얼룩을 해체시킨 후, 장지 위에 여러 장 중첩시켜 붙여낸다.

접히거나 구겨진 주름으로 산세를 재구성하고, 찢어진 화선지의 먹의 농담을 사용하여 원경과 근경을 만들어낸다. 작업의 마지막은 콩테로 마무리한다.

때로는 큰 작업으로 시작하여, 원하는 부분만 트리밍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찢어버리기도 한다.

작가는 먹물의 우연적 효과를 만들고, 그것을 해체시키고 다시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구도와 구성을 찾아낸다.

자기성찰로서의 ‘어떤 풍경’

그가 그려내는 산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 타이틀이기도 한 <어떤 풍경>은 어디에선가 본 듯 하지만, 본 적 없는 풍경이다.

설박- '어떤 풍경'. 100x70cm  화선지에 먹, 콜라주.  2019.
설박- '어떤 풍경'. 100x70cm 화선지에 먹, 콜라주. 2019.

그의 화폭 안에서 검정색의 먹은 산으로, 여백은 하늘과 강으로 어우러진다.


언뜻 보면 그의 ‘산수’는 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묵직한 자연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이 생긴다. 많고 많은 주제 중에 왜 산수를 그리는가? 그는 자연을 그대로 그린다기보다는 자연에 자신을 이입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산수화’는 내가 누구인지 물어보게 하는 동시에 나 자신을 응시하게 한다는 점에서 전통 산수화의 내면적 정신성과 맞닿아 있다.

먹물을 부어 말리고, 화선지를 찢고, 중첩하여 붙이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자신을 수련하고 정화하는 자기수행의 과정에 가깝다.

전통적인 산수화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하며, 끊임없는 자기성찰로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동시대 산수화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그는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센터 레지던시, 오버랩 필리핀 레지던시 등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을 시도해왔다.

최근 그의 고민은 현재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확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은 올해 3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의 개인전 준비와 이탈리아 전시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 바로 앞이 아니라, 더 멀리 바라보며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나갈 그의 힘찬 도약이 기대된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3호(2020년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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