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농로를 따라 한참을 달렸을까. 추수를 끝낸 겨울 들판은 황량하다 못해 적요하다.

하늘을 향해 이따금 차오르는 새떼들, 채 거두지 못한 푸성귀들의 이파리 위로 햇살이 눈부시다. 이곳에 터를 닦고 자리한 지는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정주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을 때만 해도 온통 잡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하지만 우계 선생의 발길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장성은 본래 문향(文鄕)이었고 우계 선생은 먹빛 속에 향기를 담고 이곳. 장성의 문향을 본향(本鄕)으로 심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함이 현재를 만들어

유백준 서예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유백준 서예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매일 새벽 5시면 집을 나선다. 신가동에 있는 서예원이 목적지이다. 1986년에 학정 이돈흥 제자로 서예에 입문했다.


선생은 “유년기엔 서당에 다녔다. 천자문, 명심보감 등을 이때 배워서 한문과 서예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다.”며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고 웃는다.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학정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니 꼭 39년 6개월이란 시간이 동일하다. 밥벌이 수단과 서예공부의 나이가 같은 이유가 되겠다.

선생은 “먹을 갈고 글씨 쓰고 20여 명의 후학을 지도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곤 한다.”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예를 생각하며 스승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학정을 만났다. 지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운동을 끝내고 스승을 찾아 하루 공부를 시작한다.

스승의 강직하고 단정한 품격은 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무언의 가르침인 셈이다. 선생은 “내 서예의 시작이 스승으로부터였으니 하루의 시작을 스승 곁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고 말한다.

부지런해서 미루는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온화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경찰이었던 직업을 마감하면서 자신이 평생 동안 하고 싶었던 서예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이유가 되겠다.

앞을 보고 한 걸음 나아간다.

먹을 대할 때 겸손하다. 붓을 들 땐 허리를 엎드려 머리를 숙인다. 겸손하게 나를 낮출 때 글씨를 쓸 수 있다.

40년이 되어가는 시간을 먹을 엎드려 모셨다. 그리고 그 속에서 먹빛을 따라 선생의 피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선생은 “서예는 나를 스스로 자정하도록 했다. 갖은 빛깔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미혹하지 않을 수 있는 굳건함 역시 먹에서 나왔다.”고 선생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먹은 선생에게 힘을 주었다. 자정능력을 주었고 스스로 체득하고 헤치고 나아갈 힘을 주었다.

그래서 먹과 서예는 선생에게 있어서 분신 같은 존재로 자리한다. 정도가 아닐 때 선생이 쥐고 있던 붓이 ‘청렴(淸廉)’을 썼으며, 무엇엔가 미혹하고 있을 때는 ‘하심(下心)’으로 먹을 갈고 있었다.

도연명의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을 가슴속에 품고 늘 되새김질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시간을 소중하게 아껴 쓰라는 뼈아픈 충고이다.

더불어 명심보감에 나오는 ‘은이광시(恩義廣施)’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은혜를 널리 베풀고 원수를 맺지 않으려’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빛나는 ‘연우회’

연우회는 학정 스승의 제자들이 스스로 자리매김한 모임이다. 선생은 이 연우회를 만들었고 현재 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학정서예연우회에서 한 일 중 두드러진 정신은 호남의 인물과 정신을 이어받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일이었다.

선생은 유행처럼 시대흐름을 따라가는 일을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백준 서예가. ⓒ광주아트가이드
유백준 서예가. ⓒ광주아트가이드

선생은 “한때 현대서예라는 이름이 주목받던 시간이 있었다. 서예의 뿌리가 선비정신에서 이어진 문자예술이라고 할 때 먹과 붓 안에는 반드시 ‘정신’이 살아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행처럼 번져가는 ‘현대’라는 이름을 등에 업은 서예가 있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바람에 뽑혀지는 나무처럼 현대서예는 어느 날 갑자기 구름처럼 몰려들었지만 이내 좌초하고 말았다.”며 “전통과 정통을 이어가는 서예야말로 올곧은 우리의 정신이다.”고 설명했다.

서예는 문자예술이다. 문자가 서로간의 소통의 필요성으로 일어났으니 마땅히 읽을 수 있어야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더불어 글씨는 마음의 얼굴이니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 서체로 마땅히 써 내려감이 옳다.

선생은 “천천히 느리게 가라.”고 조언한다. 우리 모두는 삶의 도반이기 때문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2호(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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