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2007 대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크레용을 쥐어본지 오래다. 난 유치원 때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크레용을 쥐고 공룡, 해바라기, 고래, 선녀, 냉장고 등,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그린 기억이 있다.

흰 도화지에 하나씩 채워지는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재미있었지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던  것 같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싶은 거야? 바다? 쥬라기 공원? 냉장고랑 공룡이 왜 같이 있어? 이 그림의 배경이 정확히 뭐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에 대해 알 것도 같다. 고래를 그렸으면 바다 속 물고기 사회가 배경이 되어야 하고, 공룡을 그렸으면 중생대 평원 혹은 숲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턱대고 꽃이며 동물이며 가전제품이 한꺼번에 등장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틀과 배경이 제시가 돼야 여러 가지 장치들이 일관성을 띨 수 있고, 그래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오합지졸 여러 요소들이 큰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서로 어울림을 통해 비로소 그림은 완성된다. 이러한 그림은 사회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 즉 선거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에 의해 끊임없이 그려지고 있다.

2007년 대통령선거의 해가 밝았다. 현 정권과 범여권의 혼란 양상이 올해 연말 대선의 경쟁 양상을 더욱 앞당기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세론'으로 요약되는 현재의 선거 양상이 과연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그만큼 선거 국면의 향배를 둘러싼 정치권 안팎의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춤추는 변수들 속에서 벌써부터 인물 중심의 당락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몇 포인트 하락했다’, ‘이명박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대선출마자들의 건강나기와 새해각오’등 인물행적 중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방송과 신문의 보도행태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향후 5년 동안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대통령의 전체적인 상, 역할, 주력과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누가 당선 되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2020년의 우주를 배경으로 할 것인지, 비오는 날의 구름 위 하늘나라를 배경으로 할 것인지와 같은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크레용을 바쁘게 움직이는 유치원생과 같은 꼴이다. 결국 그 그림은 구성이 엉망이고 일관된 흐름이 없어 완성되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이다. 

아직 신년 벽두고 ‘대통령 그림’을 완성하려면 10달하고도 한 달이 더 남았다. 지금은 어떤 인물이 그림에 등장하게 될지에 대한 기대보다는 어떤 배경에 서 있을 지에 더 관심을 둬야할 때다. 그리고 그 배경을 만들기 위해 향후 5년 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대통령의 상과 역할 규정, 주력과제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하지 않을까. 누가 대통령이 될지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그 대신 대통령선거의 흐름을 조망하면서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선택은 과연 무엇일지, 어떤 대통령을 만들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국민 각자가 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족감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탄생할 것이다. 
  

나현정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