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

슬리퍼를 신고 느지막한 시간에 시장 안을 어슬렁거리는 사람, 기다란 다리로 우아하게 걷는 잿빛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한때는 같이 있었지만 이제는 멀리 떠난 동료작가들에게 늘 보던 사람처럼 대하는 사람.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작업실로 출근하는 사람.

10년이 넘은 시간동안 대인예술시장에서 살았다. 시장이 예술시장으로 거듭나는 것을 역사로 지켜보았다.

ⓒ이기성
ⓒ이기성

많은 작가들이 시기에 맞춰 들고 났지만 작가는 여전히 시장의 낡은 골목 모퉁이에 꽃등을 켜 둔 채 잿빛 고양이랑 잘 지내고 있다.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꼬막만한 작은 집에서 살고 있는 작가의 묘한 매력에 빠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개인전을 추궁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시를 하게 되었다.

돌이 내게로 왔다.

전시는 작가의 집에서 열린다. 12점의 작품을 집 안 이곳저곳에 설치하고 안배했다. 작가는 “3년이 넘은 시간동안 이 전시를 준비했다.”면서 “생각보다 작업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섬세함이었다. 아르곤 용접의 특성상 최대한 집중을 요했고, 내 성격 자체가 한 치의 어긋남을 용서할 수 없어서였다.”고 그간의 작업과정을 이야기했다.

주재료는 돌과 스텐리스 막대였고 알곤 용접으로 작업을 완성하고 마무리했다. 돌은 전국에서 모았다. 여행을 하면서 돌의 얼굴과 교감을 느꼈을 때 가져와 모았다.

작가는 “이상하게 돌이 좋았다. 가져올 때의 수고로움 보다는 작업을 완성했을 때의 빛날 돌의 얼굴이 더 빨리 보고 싶어 애가 닳았다.”고 고백했다.

서해안, 남해, 무등산, 여수, 고흥까지 그의 품으로 돌아와 다시 살아난 돌은 크기가 다양했다. 돌을 훼손하지도 않았다. 있는 모양 그대로, 가져온 상태를 온전하게 이용해 잠자고 있는 돌의 영혼을 일깨워주었다.

잠자고 있는 돌을 깨운 것은 작가였다. 생명을 불어넣은 이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눈에 들어 온 돌은 두 손에 몸을 맡긴 채 작가의 작업실로 이동했다. 제자리에서 처음 맞는 이동인 줄도 몰랐다.

잠자는 돌, 깨어나는 돌

단단한 것들은 역사를 가졌다. 주먹만 한 돌은 처음부터 그만했을까. 커다란 돌 역시 처음부터 커다란 몸피였을까.

알 수 없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존치했었는지 크고 작은 중량마저도 미루어 짐작도 불가하다. 중요한 것은 돌이 그 자리에 있는 동안 몸으로 체화했을 주변의 환경이다.

돌은 그 자리에 있었다. 봄이 오고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갔다. 제 몸을 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돌. 누군가, 무엇인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언제부터였을지 모르는 그 자리에서 언제까지일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돌이었다.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시간을 다시 견뎌야했다.

작가는 “나비를 만들 생각을 하면서 나비에 맞는 돌을 찾았다. 바다를 날아야 할 나비는 섬에서 온 돌이다.  돌을 보는 순간 날개를 달고 육지를 향해 날개 짓을 할 나비가 그려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비의 날개를 용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알에서 깨어나고 번데기에서 허물을 벗는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나비의 날개에 그려진 무늬를 익히고 용접하는데 많은 날들을 보내야 했다.”고 고백했다.

이기성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이기성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꼭 나비의 성체 같은 형태의 돌이었다. 나비의 몸통에 날개가 만들어졌을 때 돌은 드디어 작가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았다.

빼어난 것은 고래였다. 산에 있던 돌이 꼬리를 달고 심해의 바다로 나아간 것이다. 흑동 고래는 작가였다. 부드러운 유선으로 만들어져 물을 분수처럼 뿜어내고 있는 고래는 용접의 섬세함의 극치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임의로 흑동고래에 앞발을 달았다. 원래의 흑동고래에게는 앞부분에 지느러미가 없지만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라는 의미로 앞발을 달아주었다.”고 설명했다.

작품 모두가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이해가 쉽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이란 자극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천천히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을 작가의 의도대로 느릿하게 둘러보며 감상할 일이다.

전시 관람은 작가가 일어나는 시간, 관람이 끝나는 시간은 작가가 잠들 시간이다. 이 전시는 작가의 작은 집에서 겨울까지 쭉 이어질 예정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0호(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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