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빛에 반응하는 조각가 정운학
[범현이의 작가탐방] 빛에 반응하는 조각가 정운학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19.10.1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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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풍경

마당의 햇살이 눈부시다. 크고 작은 나무와 화초들의 이파리엔 생기가 넘친다. 적당한 한옥을 털어내고 지붕 낮은 작업실을 마련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마당 가 식물들의 소란스러움을 제외하고는 소리 한 점 들리지 않은 고요만이 존재한다. 열어둔 넓은 창 너머의 풍경이다.

작업실은 전시장 같다. 곧 전시를 시작하려고 설치 중인 모양새다. 지난 작업도 현재의 작업도, 막 전시를 마치고 철수해 온 작품도 바닥과 벽체 여기저기에 걸려 있고 누워 있다.

옷과 신발, 자루 그리고 빠져나간 나의 몸

정운학 조각가. ⓒ광주아트가이드
정운학 조각가. ⓒ광주아트가이드

처음 작가를 만난 곳은 함평이었다. 천정 높은 작업실이었다. 오래전 이야기이다. 수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만난 작가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리고 작업에 관한 이야기에 깊은 세월의 성찰이 느껴졌다.

작가의 작업을 기억한다. 신발이었다. 노동자의 작업화 같은 커다란 신발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날개가 달린 신발로 확장되었지만 첫 작업으로 기억하고 있는 작업화는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고단한 사람살이가 보였다. 갈 길을 항상 먼저 앞서 한 발을 떼는 신발은 내가 가는 모든 곳을 알고 있는 진실 바로 그것이었다.

옷도 마찬가지로 이해했다. 한없이 구겨진 옷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옷을 필요로 하고 몸에 걸쳤을 그 누군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자꾸자꾸 사라지고 사라져서 알맹이는 사라지고 표피만 남아 있었다.

자루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인가를 가득 담는 용도로 사용될 물성인데도 그저 자루로만 남겨져 있었다. 현대인들의 허상. 바로 그것이었다.

작가가 최근 들어서 천착하고 있는 재료는 신문지이다. 천연의 종이와 인공의 FRP가 상생하고 공존하는 작업이다.

만들고 부숴가며, 탐닉하고 양산하는 동시대의 생산물 속에서 작가는 신문을 재료로 사용함으로서 시대를 고발하고 기록한다.

살아있음의 역사. 우리는 신문지.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은 신문지와 FRP로 만들어 낸 집이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네모 상자 같은 집은 여러 가지 생각을 채집한다.

혈연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현대인들에게는 사각의 틀 안에 스스로 갇힌 것처럼 힘들게 부딪혀 온다. 가족들의 하루하루의 일상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가족의 변용을 신문지라는 매개로 풀어냈다. 작게 뚫려진 창 안으론 그 집을 거쳐 간, 현재 진행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활동사진처럼 흔들리며 보여준다.

또 있다. 신문지로 만들어진 무등산의 풍경이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살이를 지켜보았을 무등산을 결국 작가는 신문지를 구겨서 표현했다.

억압과 굴곡, 고갱이를 구겨진 신문지 안에 담아서 작가만의 무등산으로 재해석 형상화한 것이다. 입체회화인 셈이다.

작가는 “무등산을 해석하는데 많은 생각이 있었다. 실험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안개에 둘러 쌓인 무등산을 표현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광주의 명산인 무등산을 나만의 생각과 방식으로 어떻게 조형하느냐가 관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조각이면서 회화 같은 느낌이 강하다.

‘광주이야기’란 명제를 갖고 있는 작품 앞에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담고있는 300여 개의 네모 상자가 주는 울림 때문이다.

빛을 내장한 상자는 1980년 5·18항쟁 당시를 기록한 사진들이 내장되어 우리의 참혹한 시대를 복기시키고 있었다. 이 구조물들은 구 도청 앞 분수대에 진열되어 또 다른 분수대인 미디어아트를 통해 항쟁의 순결함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빛을 이용한 작품은 무궁한 이야기를 가지고 관람객들을 맞는다. 빛이 주는 근원적 감동이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빛을 향해 걷고 있다. 눈으로 보는 빛과 마음으로 보는 빛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며 “나만의 스타일로 작업하려 한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넘나들며 구현하고 싶은 나의 작품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오랴도록 이 길을 것이다. 빛(Light). 자체만이 아닌 삶의 빛, 사랑의 빛을 창조하고 구현해가는 것이 내 작업의 최종 종착지이다.”고 말했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9호(2019년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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