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고구마투쟁', '함성지' 등 1970년대 반유신운동 활동 앞장
1980년대 광주전남국본, 5.18탑추진위, 환경공해연구회 등 주역
2017년 대장암 수술 후 2년간 암투병해오다가 4일 끝내 별세
1970년대 농민생존권을 위한 '함평고구마 투쟁'과 박정희의 반유신의 초헌법성을 폭로한 '전남대 함성지' 투쟁 그리고 1987년 민주헌법쟁취 광주전남본부와 환경운동의 포문을 연 환경공해연구회 등을 주도해온 이황 선생이 4일 대장암 투병 끝에 향년 64세로 운명했다.
고인은 민주화운동가 이강 선생(큰형님)의 바로 아랫 동생으로 형제 모두가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여 옥고를 치리는 등 민주주의 발전과 노동자 농민의 민중생존권 그리고 인권 증진에 크게 기여해온 민주화운동의 전략가이자 이론가였으며 맹렬한 활동가였다. (아래 살아온 길 참조)
고인은 1970년대 광주노동현장인 '성심여사'와 전남 함평고구마투쟁 등 민중생존권 투쟁 기획과 노동야학 등의 활동을 통해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해왔다.
특히 광주전남 민주화운동을 크게 전환시킨 전남민주회복국민협의회, 5.18위령탑건립추진위원회, 민주쟁취국민운동 광주전남본부, 환경공해연구회 등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도 명예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하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왔다.
고인은 1990년대부터 광주 동구 대인동 '화랑궁 식당'을 운영하면서 광주, 전남 주요 민주화운동 단체의 공식, 비공식 행사는 물론, 민주인사들의 회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
특히 이곳 식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광주방문 당시 이곳에 들러 광주의 민주인사들과 오찬을 했을 정도로 민주화운동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고인은 동양철학 '주역'의 해박한 전문가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동양철학 '주역'에 매진해오다 공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광주에 '만암주역학연구소'를 개설하여 연구모임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강연을 해왔다.
고인의 지인들은 "고인은 평생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온 삶을 바쳤던 냉철한 이론가이자 전략가 그리고 동양철학의 해박한 전문연구자였다"면서 "암투병 중에도 자신보다는 주변의 어려운 민주화운동 선후배와 동료들을 우선 챙겨온 속정 깊은 영원한 친구였다"고 고인의 삶을 회고했다.
치열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도 언제나 '해맑은 미소'와 '따뜻한 가슴'으로 모든이들을 대했던 고인은 2017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장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운명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정순 여사와 아들 동호씨, 딸 반야씨가 있다.
빈소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301호. 발인: 2019년 10월 6일 오전 9시. 장지:옛 5.18묘지. (062)227~4382, 4300.
고 이황 선생 약력 (1955.1.10. ~ 2019.)
1955. 1. 10. 출생 (해남군 마산면 산막리 / 이훈, 최영순의 6남 2녀 중 3남) 1973. 3. 반 유신헌법 반대투쟁의 효시 ‘함성지 사건’으로 복역(당시 18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