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조선의 멋 · 백자의 맛' 김영택 선생
[범현이의 작가탐방] '조선의 멋 · 백자의 맛' 김영택 선생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19.09.30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마산 미황사가 품은 펜화 작가

폭염주의보였다. 달마산 미황사를 찾아가는 길. 두 번의 소나기를 만나고 몇 개의 터널을 지났다. 온통 초록의 세상이 여름의 정점을 알려주었다. 미황사는 일 년에 한 번 기꺼이 찾아가는 절이었다.

일 년 중 단 하루 지상에서의 건재함을 하늘에 알리고 해풍에 제 몸을 말리는 괘불제가 열리는 날, 탱화 속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 바로 그 한 번의 날이었다.

오늘은 작가를 만나러 간다. 세계문화유산과 우리의 전통적 문화유산을 0.05mm의 펜으로 작업해내는 작가였다. 한 점의 작품 완성을 위해 50만 번 이상의 펜을 사용해야 한다니 작업을 넘어 스스로를 수행하는 일일 것이다. 미황사가 품고 있는 또 다른 문화유산인 셈이다.

운명처럼 맞닥트린 펜(pen)화(畵)

김영택 펜화가.
김영택 펜화 작가.

펜화는 비건(vegan)의 시작과 동의어이다. 둘은 30년 째 작가와 한 몸으로 건재하고 확장되어 작품 속의 맑은 정신으로 살아난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정밀하고 세밀하게 무엇인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은 지폐를 그려서 가게에 갔는데 주인이 돈인 줄 알고 받았다. 물론 호되게 아버지에게 야단을 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고 웃었다.

디자이너였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1993년 국제상표센터에서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이너 중 54명에게 수여하는 ‘디자인 엠베서더’ 칭호도 받았다.

1994년에는 제1회 국제로고비엔날레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작가는 “1995년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로고디자인비엔날레’가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펜화를 만난 극적인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 차 들른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렸을 때부터 무엇인가를 그리는 일에 가장 매력을 가졌던 내 삶이 어디서부터 맥이 끊겨 있는 것인지를 들여다보게 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자 작가는 자신을 지탱했던 회사를 최소한으로 정리하고 축소했다. 이후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은 펜화를 그리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일이 되었다.

2002년 통도사 법사실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나’라는 존재를 잊고 통도사를 펜화로 그렸다. 그리고 근본불교의 큰 스승인 청해무상사의 재가 제자가 되었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가르침 아래 5계를 철저히 지켰다.

5계의 첫째인 ‘불살생(不殺生)’ 즉 철저한 채식생활로 접어든 이유가 되겠다. 일상생활에서 떨리는 손도 펜을 잡는 순간 그림에 고정되고 정교한 선을 끝도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시력도 건강하다.

0.1mm 펜으로 만들어진 세상

정교하나 담백하다. 조선의 백자 같다. 검은 잉크로 그어진 선들이 전부인 화지 안에 한 송이 꽃이 피어있다. 인그레이빙(Engraving) 판화처럼도 보인다. 가늘면서 섬세한 선들이 서로가 서로를 물고 형태를 구축하고 있다.

작가는 “0.1mm의 펜촉을 사포에 가는 것으로 작업은 시작된다. 0.1mm의 펜촉을 0.05mm로 만들어야 보다 더 정밀하고 세밀한 묘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암 덩어리를 몸 안에 안고 있는 사람이다. 펜화가 완성될수록 암은 작아지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오래된 건축문화유산들이 작업의 주 포인트이다.

고문화재에 매료되어 어린 시절부터 수집해왔던 옛 물건들과 옛날 사진, 자료들, 오래된 유럽달력이나 영인본들이 펜화를 하면서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다. 언제인지 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펜화를 할 수밖에 없도록 이미 예비되어 있었던 셈이다.

우리 전통건축물에 집중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무아(無我)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인 것, 있는 그대로의 물성을 인정하고 자연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우리의 건축물이 작가의 마음을 당겼다고 했다.

김영택- 달마산 미황사.
김영택- 달마산 미황사.

특히 작가는 “자연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공생의 관계로 보는 한국건축술의 정신을 작업 안에 담으려 노력했다.”고 이야기 했다.

새로운 원근법도 만들었다. 멀리 있는 사물과 가까이 있는 사물에 대한 비례의 원근보다는 우리의 눈이 인식하는 살아있는 원근법을 작업에 투입했다. 부분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이 아닌 통으로 전체를 바라보며 우리의 눈이 사물을 통제하고 확장시키는 이른바 김영택 원근법인 셈이다.

작가는 중앙일보에 10년 동안 ‘펜화에 담은 한국문화재’, ‘펜으로 복원한 문화재’, ‘세계 건축문화재 펜화기행’을 연재했으며, 지난 30여 년의 세월동안 우리나라 건축문화재는 물론이고 세계건축문화유산 160여 점 이상을 0.05mm 펜화로 건축했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8호(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