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 서옥렬 선생이 추석 명절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오전 9시 30분, 광주 북구의 으뜸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징역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멀고 탈장에다 심장질환, 관절질환에 시달려왔다.
고인은 1927년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서 아버지 서계술 씨와 어머니 이경심 씨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주하여 미동초등학교, 경기상고를 마치고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수학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인민군에 편입된 뒤 북으로 가게 됐다.
고인은 북에서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교원이 되었고, 같은 교원이었던 강순성 선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두었다.
1961년 8월 공작원으로 남파해 고향집을 방문한 후 월북하다가 붙잡혔다.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30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1990년 출소했다.
출소 후 고인은 주로 광주에 기거하면서 생업으로 뜸 치료를 했으며, 지역 통일운동에도 참여했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에 대해 “내 부친과 징역을 함께 살았기에 스스럼없이 지냈다”면서 “10일 전에도 광주에 내려가 생전의 고인을 만났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고인은 머리가 아주 비상하고 이론적 소양이 깊어 광주지역의 통일인사들에게 통일운동의 방향제시를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2차 송환 희망자였으며. 양심수후원회와 통일광장 등에서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위해 힘써 왔다.
빈소는 광주역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발인은 14일이다.
(062)264~4444, 광주역 장례식장.
서옥렬 선생 걸어 오신 길 1927년 12월 25일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