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 서옥렬 선생 별세.. 향년 92세
장기수 서옥렬 선생 별세.. 향년 92세
  • 통일뉴스
  • 승인 2019.09.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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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 서옥렬 선생이 추석 명절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오전 9시 30분, 광주 북구의 으뜸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징역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멀고 탈장에다 심장질환, 관절질환에 시달려왔다.

고 서옥렬 선생.
고 서옥렬 선생.

고인은 1927년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서 아버지 서계술 씨와 어머니 이경심 씨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주하여 미동초등학교, 경기상고를 마치고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수학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인민군에 편입된 뒤 북으로 가게 됐다.

고인은 북에서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교원이 되었고, 같은 교원이었던 강순성 선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두었다.

1961년 8월 공작원으로 남파해 고향집을 방문한 후 월북하다가 붙잡혔다.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30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1990년 출소했다.

출소 후 고인은 주로 광주에 기거하면서 생업으로 뜸 치료를 했으며, 지역 통일운동에도 참여했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에 대해 “내 부친과 징역을 함께 살았기에 스스럼없이 지냈다”면서 “10일 전에도 광주에 내려가 생전의 고인을 만났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고인은 머리가 아주 비상하고 이론적 소양이 깊어 광주지역의 통일인사들에게 통일운동의 방향제시를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2차 송환 희망자였으며. 양심수후원회와 통일광장 등에서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위해 힘써 왔다.

빈소는 광주역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발인은 14일이다.
(062)264~4444, 광주역 장례식장.

 

서옥렬 선생 걸어 오신 길

1927년 12월 25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현재 팔금면) 출생
부 서계술씨와 모 리경심씨의 5남 1녀 중 장남

전남 신안 소학교 4학년까지 다니시다가 서울로 이주
 미동초등학교, 경기상업학교 졸업, 한국은행 근무.

1947년 국민대학교 야간학부 입학
1948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편입
1950년 조국전쟁 발발(대학교 3학년 재학), 6월 28일 서울시당 선전사업 담당

1950년 8월 의용군 자원 입대, 후방총국 산하 운수부대 운전병으로 복무

1954년 2월 강원도 천내군중학교에서 교편
1955년 10월 같은 학교 강순성 선생님과 백년가약
1955년 12월 1일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 수학

1959년 원산에 소재한 교원대학교에서 후학 양성
1961년 8월 서해안(김포)-해병대 초소에서 체포
1990년 9월 대전교도소에서 출옥(29년 투옥)

- 출옥 후 통일 경제전문가로서 저술활동과 후배 양성활동 활발하게 전개

- 유족으로 태길, 태현 형제를 두었지만 오늘날까지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통일과 가족의 그리움을 갈망하다 오랜 투병생활 중 2019년 9월 11일 오전9시42분 광주병원에서 운명. 

<저서>
1993년 ‘역사의 수레를 끄는 지혜’ 출간
1996년 ‘세계정치 어디로 가는가’ 출간
1998년 ‘조국을 사랑한 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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