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세계의 정치문화를 바꾼 철도

독일의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기차의 운행은 시간의 여백을 축소시켰으며 화약이나 인쇄술만큼 인간 삶의 색채와 형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준 혁명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말이 아니라도 철도는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나비효과'의 진원지였다. 철도에 의해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지자 인류의 정치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앙집권은 정치권력의 오랜 숙원

Heinrich Heine(1797-1856)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독일 시인.
Heinrich Heine(1797-1856)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독일 시인.

옛날 중국에는 1만 여개의 나라가 있었으며 우리나라도 고대 삼한에 약 100개의 나라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읍락(邑落)수준의 작은 규모로, 각각 독립된 외교권과 국가권력에 상당하는 자립적 권리를 가진 정치집단을 의미한다.

역사학에서는 이를 ‘읍제국가(邑制國家)’라고 정의하며,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작은 나라들은 통합과 정복을 거쳐 점차 규모를 키우며 고대국가로 발전했다. 다시 몸집이 커진 각 나라들은 활발한 정복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페르시아나 중국, 로마와 같은 거대 제국이 출현했다.

국가의 형성과 발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개 이러한 경로와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커진 나라들은 넓어진 영토를 통치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연히 제국의 각 지방은 일정수준의 자율적 권리를 누리는 자치 분권의 형태로 지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점과 집중을 추구하는 정치권력의 속성상 중앙집권은 오랜 숙원이었다. 특히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일수록 중앙집권의 의지가 강했다.

제국의 왕들은 자신의 명령을 전 영토에 신속히 도달케 해 일사불란하게 국가를 운영하고자 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분권적 정치체제인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함과 동시에 도량형을 통일한 것과 수나라가 대운하를 건설하여 남북의 물길을 연 것은 모두 중앙집권을 향한 의지의 발로였다.

이밖에도 페르시아 제국이 건설한 ‘왕의 길’, 로마제국이 로마를 중심으로 길을 닦은 것도 모두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중앙집권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고작 말을 이용한 이동은 속도가 느리고 제한적이어서 권력의 힘이 넓은 영토에 고루 미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기차라는 문명의 이기가 등장함으로써 분권적 정치문화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철도의 등장으로 획기적으로 달라진 정치문화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독일제국 총리(1871).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위력은 실로 막강했다. 특히 넓지 않은 영토에 300여개의 소영주국으로 쪼개져 있던 독일의 통일은 철도가 이루었다고 말해도 전혀 과장이 아닐 만큼 그 역할이 컸다.

무엇보다 독일의 철도는 ‘영주국 간의 경계가 곧 국경’이라는 개념을 깨뜨리고 말았다. 덕분에 이동을 저지하려는 영주들의 권력은 자연스레 소멸되었다.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가 철도의 정치․군사적 중요성을 간파하고 모든 철도를 국영체제로 운영하려했던 것도 기차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철과 피의 힘으로 전국을 통일한 그였지만 기차를 통한 자유로운 왕래가 지역 간 경계를 보이지 않게 허물어왔다는 사실을 주목했던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단순한 이동수단인 기차를 통일의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철도는 독일통일의 경우처럼 자유왕래를 통해 분열된 나라와 지역을 통합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통일된 국가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근대적 교통망인 철도와 이에 부가적인 통신망이 발달하자 국왕의 명령은 영토 끝까지 즉시 전달되었으며 지방의 감시도 한층 용이해졌다.

특히 군대의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 한 기차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국왕은 필요시 즉시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됨으로써 지방 세력을 더욱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집권자의 오랜 꿈인 중앙집권을 실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차의 운행은 커뮤니케이션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기차가 근대적 커뮤니케이션에 미친 영향은 ‘동시성의 감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기차를 통해 각 지역의 풍물과 소식이 먼 곳까지 빠르게 전파됨으로써 사람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유대감과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다.

즉, 교류를 통해 공통의 생활감각을 누리게 됨으로써 중세적인 농촌공동체의 지역적 폐쇄성을 점차 허물고 시민적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앙집권적 근대국민국가’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바탕이 되어 출현할 수 있었으며 철도가 근저에서 커다란 역할을 해온 것이다.

철도의 보급으로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정치문화가 변모하자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 1831~1881)는 “기차야말로 가장 큰 중앙집권의 힘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철도를 통해 강력한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중국

제임스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 미국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 미국 제20대 대통령.

기차가 등장한 지 약 200년이 지난 현대에는 철도를 통해 중앙집권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넓은 영토와 56개의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칭짱(靑藏)철도를 건설해 티베트의 고원도시 라싸까지 철도를 놓았으며, 전국을 촘촘한 고속철도망으로 연결했다.

미개척지를 개발하고 경제도약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독립의 요구가 빗발치는 티베트의 지배를 강화함과 동시에 정치적 분열을 예방하여 강력한 통일국가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숨어있다.

중국의 철도정책은 군현제와 대운하 건설 등 고대부터 중앙집권을 추구했던 뿌리 깊은 역사적 전통과 관련돼 있다고 하겠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기차는 근대적 정치문화의 형성에 많은 공헌을 했으며 지금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동시에 중국의 예에서 보듯 교통 발달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도 엿볼 수 있다.

“길이 열린다면, 정말 친한 벗 혹은 최악의 벗이 우리의 방문자가 되리라.”는 티베트의 속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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