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대학교 총장 선출, 직선제 vs 간선제?
[기고] 조선대학교 총장 선출, 직선제 vs 간선제?
  • 광주in
  • 승인 2019.07.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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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조선대학교 대학자치운영협의회와 혁신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17대 총장선출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성재 조선대 교수가 발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조선대학교 총장직선제: 예, 아니오?

김성재(신문방송학과 교수)

I. 눈먼 권력, 다수

조선대 총장은 1988년 대학민주화 이후 2016년까지 직접선거로 선출되었다. 총장선거를 주관해온 대학자치운영협의회(대자협)은 제8대 총장(이돈명)부터 제16대 총장(강동완)까지 구경영진의 대학복귀 시도에 얽힌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9명의 총장을 만들어냈다.

대자협은 3개 대학 구성원 조직과 총동창회가 참여해 구성된 국내 유일의 대학자치 기구로서 그동안 조선대 총장을 선출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현재 교수단체인 교수평의회가 대자협을 탈퇴해 큰 기둥이 하나 빠졌지만, 대자협은 여전히 대학의 최고경영자를 뽑는 데 그 역할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대학교 전경.
조선대학교 전경.

민립대학 조선대의 총장은 구성원과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기관장이기 때문에 “어떻게 어떤 인물을 선출할 것인가?”라는 과제는 막중하다고 할 것이다.

이 과제를 푸는 데 조선대 구성원들은 28년 동안 대학 자치와 대학 민주주의의 상징인 ‘총장직선제’를 채택해왔다. 그러나 조선대의 총장직선제는 항상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최적의 선출방식은 아니었다.

대학 밖의 정치권을 능가하는 선거 혼탁, 편 가르기 그리고 논공행상의 보직 인사가 대학을 심각하게 분열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폐해는 전국적으로 대학 총장직선제 폐지의 결정적인 논거가 되어왔다.

현재 조선대가 2018년 교육부 자율개선대학 평가에서 탈락한 후 총장 자격과 거취를 둘러싼 대학의 난맥상은 총장직선제 폐해의 한 단면이라고 판단된다.

직선제로 선출되는 대학총장은 대학에서 사용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결정해주는 대가로 선거권을 가진 구성원들의 표를 구해야 하고, 구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선거권자가 한 후보를 지지하여 도장을 찍는 한 표는 숫자 1에 불과하기에 인격이 없고, 다수의 표를 획득한 자가 당선된다.

따라서 총장직선제가 상징하는 이른바 ‘대학 민주주의’는 선거권자의 인품이나 자질이 아니라, 다수에 의해 실현된다. 한 마디로 선거에서 다수는 눈먼 권력이며, 유혹의 대상이다.

아래에서 발제자는 28년 동안 직선제로 진행되었던 조선대 총장 선거를 25년 넘게 현장에서 관찰한 네 가지 영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II. 총장선거는 보직 판매

1988년 ‘1.8항쟁’으로 대학민주화가 완수된 후 조선대는 임시이사 체제로 들어갔고, 대학 최고경영자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총장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이때 국내 대학 최초로 구성된 대학자치 기구인 대자협은 모교 출신 인권변호사 이돈명씨를 단일 후보로 추대해 갓 출범한 교수협의회(교협)에 선거권을 부여해 찬반투표 방식의 총장직선제(?)를 도입했다.

교수들이 선출한 제8대 총장(부록 1)은 중요 보직자를 외부 대학에서 불러와 새롭게 탄생한 대학의 실무를 맡겼다.

외부에서 영입된 새 총장에게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보직 판매의 기회는 없었다. 제9대 총장 선거는 외부에서 불러온 후보자와 학내 출신 교수(구경영진 대변)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에서 대자협 주관 아래 3차례의 교협 직접선거로 치러졌다.

외부 출신 후보자에게 보직 판매의 기회는 없었지만 3차 선거의 공로자에게 중요 보직이 주어졌다.

그러나 제10대 총장 선거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학내 교수들이 대거 총장 후보자로 나섰고, 대자협 주관 교협 직접선거로 치러진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1차 투표 2위 득표자가 나머지 후보자들과 ‘합종연횡’하고 교수들에게 보직을 판매해 당선되었다.

이렇게 역전승을 통해 당선된 총장은 국회에 진출하기 위해 현실 정치인의 행보를 서슴지 않았고, 한 중요 보직자에게 자신의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뇌물(리베이트)수수를 사주한 혐의로 총장 임기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구속되었다가 보석 중에 자살했다. 고인이 된 직선제 총장은 대학 구성원들에게 치유가 불가능한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제11대 총장 선거는 직전 총장의 유고로 ‘총장서리’ 체제에서 총장후보자선출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채 다수의 학내 교수들이 후보로 출마해 졸속으로 치러졌다.

이에 구성원들의 거친 반발로 학내가 아닌 ‘구동체육관’으로 투표장을 옮기는 등 온갖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직전 총장의 핵심 참모가 40대 젊은 나이로 총장에 당선되었다.

교수들 이외에 직원노조와 총학 일부가 총장직선에 제한적으로 참여했고, 교수들을 대상으로 보직 판매와 논공행상의 보직 부여는 어김없이 이루어졌다. 이 총장도 직전 총장처럼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해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여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12대 총장 선거에서는 다수의 학내 교수들이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총장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무려 9명의 교수가 후보로 나서 누구나, 몇 번을 출마하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수의 표만 얻으면 된다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들 후보가 판매한 보직 수가 100∼200개라는 소문이 당시의 사정을 잘 얘기한다. 이들 후보 중 구경영진의 지원을 받은 교수를 포함한 그의 측근 교수들의 연구실이 학생들에 의해 대못박혀 폐쇄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때부터 총장후보자선출규정에 거금 2천만 원을 대학발전기금으로 내야 후보등록을 할 수 있는 ‘거북한’(대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의무조항이 추가되었다.

정년계열 교수들과 직원노조 51표, 총학 36표 행사로 치러진 이 선거에서 4수생이 총장에 당선되었고, 보직 판매와 논공행상의 보직 부여로 대학은 콩가루처럼 분열되었다.

9일 오후 조선대학교 서석홀에서 조선대 대학자치운영협의회와 조선대 혁신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조선대 제17대 총장 선출 방안 마련을 위한 제1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광주인
9일 오후 조선대학교 서석홀에서 조선대 대학자치운영협의회와 조선대 혁신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조선대 제17대 총장 선출 방안 마련을 위한 제1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광주인

이 총장 역시 현실 정치와 깊은 인연을 맺어 재직 시 보수야당 대선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후 공공기관 이사장으로 진출했다. 이 총장의 ‘뉴라이트적’ 정치행보는 당시 진보여당 정부가 주관한 ‘로스쿨’ 선정에서 조선대가 탈락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제13대 총장 선거에서는 인상된 발전기금 3천만 원을 낸 6명의 학내 교수들이 입후보해 경쟁해 12대 총장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직선에 임했다. 이들 후보 중 12대 총장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구경영진 측 교수들이 입후보해 민립대학의 정체성을 위협했다.

이 선거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결선투표를 거쳐 재수생이 총장에 당선되었다. 이 총장 재임 시 당선된 후보자의 선거캠프를 이끌었던 교수들에게 논공행상의 보직이 부여되지 않자 심한 갈등 끝에 진영을 떠나는 교수들도 있었다.

그 후 이들은 다른 총장 밑에서 중요 보직을 맡았다. 보직 판매가 차기로 미루어진 경우다.

14대 총장 선거는 보수정권의 강제 조치로 구경영진 추천 이사들이 포함된 1기 정이사 체제에서 재임을 노린 제13대 총장을 포함해 8명의 입후보자를 대상으로 예비선거(간선)와 본선거(직선) 혼합형식으로 치러졌다.

처음 실시된 예비선거에서 탈락한 5명의 후보자들은 전 총장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담합 성명서를 본선 전날 저녁 교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다.

이에 총장추천위원회와 의식 있는 구성원들의 즉각적인 반발이 있었지만, 전 총장과 같은 학과 라이벌 3수생이 예비선거와 본선을 통해 1, 2등으로 이사회에 추천되었다.

2위를 한 전 총장이 다시 제14대 총장으로 임명되자, 1위 득표자 지지자들은 2등 총장 및 이사회 사퇴를 주장하는 소위 ‘2등 총장 사태’가 발생해 대학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

결국 2등 총장은 취임한지 2개월도 안 되는 시점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총장 부재의 공백기는 1년이 넘게 지속된 총장직무대행체제로 채워졌다.

제15대 총장 선거는 총장직무대행체제 아래 5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정년계열 교수(698표), 직원노조(109표), 총학(50표), 총동창회(19표)가 참여한 직선에서 1차 투표 다득표자를 당선시키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는 제14대 총장 선거 시 1위를 한 4수생 후보가 당선되었다. 긴 세월을 버티며 어렵게 당선된 총장은 경쟁 후보를 포함해 자신의 선거캠프에 들어온 교수와 직원들을 후하게 논공행상했다.

이때부터 대학의 분열과 몰락의 징후는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2018년 자율개선대학 탈락의 원인을 제공했다.

제16대 총장 선거는 정년계열 교수(76%), 직원노조(13%), 총학(7%), 총동창회(3%) 그리고 지역사회 인사(1%)가 참여해 1차 투표 다득표자를 이사회에 추천하는 직선이었다. 이 선거에서도 4수생 후보가 총장에 당선되었다.

이 총장 역시 보직 판매와 논공행상 보직 부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회전문식 보직 인사와 리더쉽 부족으로 구성원들에게 자율개선대학 탈락이라는 수모를 안겨주었다. 그 이유로 직위해제와 해임을 당한 후 법적 투쟁(소청)을 거쳐 2019년 6월 24일 총장 복귀를 선언했다.

III. 총장선거, 국공립 대학으로 가는 길을 막다

조선대는 1946년 7만2천 호남민중이 설립한 민립대학이다. 따라서 그 주인은 호남민중이다. 조선대를 주인인 호남민중의 품에 되돌려주는 것은 민립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당연한 일이다.

최근 현 정부의 교육공약 중 하나인 ‘공영형 사립대’를 염원하는 많은 구성원들에게 20년 전 김대중 정부가 ‘시립 조선대’를 선물하겠다던 제안을 구성원들이 “개 물 털듯이” 거부한 것은 만시지탄으로 남을 것이다.

1988년 ‘1.8 항쟁’으로 호남민중으로부터 대학의 주인을 위임받은 구성원들은 총장권력 쟁취에 매몰되어 주인행세를 하며 조선대 국공립화를 세 차례나 거부했다.

조선대의 공영화(시립화 또는 국립화)에 대한 논의는 김대중 정부 시절 시작되었다. 조선대 시립화 문제는 1999년 7월 김대중 대통령이 초도순시차 광주시를 방문했을 때 동행한 김덕중 교육부장관에 의해 처음 제기됐었다. 당시 광주시장은 학교구성원과 시민 등 각계각층이 찬성할 경우 검토해 볼만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조선대 시립화 논의의 핵심 주체인 대학 구성원 대표들(교협의장과 노조위원장)은 그해 8월 ‘시립화 획책저지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 결성해 학내 구성원들이 “제11대 총장선거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시점에 조선대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시립화 발언자를 엄중히 처벌해 줄 것”을 이사회에 요구했다(부록 2). 그리고 공투위는 당시 조선대가 시립화되면 동사무소 직원과 같은 신분이 되어 임금과 복지의 격감이 예상됨으로 격렬히 반대했고, 서명운동을 전개해 시립화 논의를 시작하려던 당시 총장서리를 퇴진시켰다. 이로써 첫 번째 조선대 시립화 논의는 백지화 되었다.

두 번째 조선대 시립화 논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3월 광주를 방문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재단 운영 문제로 잡음이 일고 있는 조선대학교에 대해 광주 시립대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며 광주시가 조선대를 인수해 ‘아시아중심대학’으로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시작되었다.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정병국 장관의 발언이 조선대 시립화 공론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고 했다.

진보신당 광주시당 윤난실 위원장은 지방선거 당시 광주시장 후보공약으로 “조선대 정상화 방안은 시립대학으로의 전환”에 있음을 제시한 후 대학 구성원, 동문, 시민, 지자체 등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공론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대 시립화의 목적은 ‘민주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운영’, ‘학부모들의 부담금 대폭 완화’ 그리고 ‘지역 인재 양성’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대 집행부는 이미 정이사체제가 수립된 마당에 시립화는 대학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선대 시립화 논의는 2012년 6월 지역 시민단체들에 의해 세 번째로 제기되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과 광주지역 대학생들로 구성된 ‘조선대학교 시립대 전환을 위한 시민포럼’은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인 조선대를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밝히면서 조선대 정문 앞에 현수막을 걸고 기자회견을 하였다(부록 3). 이들은 “조선대가 시립화되면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은 물론 학문의 질적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며 “각종 낭비 요인을 없애고 학비를 대폭 감면함으로서 학생과 그 가정이 등록금 문제로 고통 받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더 나아가 획기적인 학사운영 방식과 유럽 선진대학의 제도를 도입한다면 더 이상 학생들이 입시에 좌절하고 고통 받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며 “광주뿐만 아니라 한국 대학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서명운동을 비롯해 토론·강연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총장 선거 후유증에 시달렸던 조선대 집행부에 의해 아무 이유 없이 거절되었다.

IV. 직선 총장의 치적, 200억 적자

김정현 조선대학교 총학생회장(왼쪽, 기계시스템학과 4년)이 24일 오전 조선대 본관 2층 총장실 복도에서 강동완 전 총장의 출근 강행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예제하
김정현 조선대학교 총학생회장(왼쪽, 기계시스템학과 4년)이 24일 오전 조선대 본관 2층 총장실 복도에서 강동완 전 총장의 출근 강행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예제하

2014년 조선대는 10% 입학정원 감축을 전제로 “지역사회의 수요와 특성을 고려하여 강점 분야 중심의 대학 특성화 기반을 조성하고, 대학의 체질 개선을 유도한다.”는 교육부의 대학특성화사업(‘CK사업’) 공모에 8개 사업단으로 응모했다.

결과는 대형 5개 사업단이 탈락했고, 소형 3개 사업단이 선정되어 약 15억 원의 정부재정지원을 받게 되었다.

원래 이 사업은 보수정권의 교육부가 대학에 진학할 학령인구의 급감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까지 3차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총 16만 명(1주기, 2014-16년, 4만 명; 2주기, 2017-19년, 5만 명; 3주기, 2020-22년, 7만 명)의 입학정원을 줄이는 ‘지방대 소멸작전’을 위장한 전초전이었다.

다음해(2015년) 실시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최우수대학(A등급, 34개 4년제 대학)에 들지 못한 대학들은 4%(조선대 B등급) 이상의 정원감축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총장의 치적 올리기에 급급했던 무능한 대학집행부는 이 사업을 위해 독단적으로 10% 입학정원 감축을 단행함으로써 4년 동안 약 200억의 적자를 냈다.

이 적자액은 대학운영비를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이 결코 회복할 수 없는 큰 짐이 되었다. 더군다나 10년 이상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위의 적자 회복은 더욱 불가능하다.

CK사업에 참여할 당시 대학집행부의 치밀한 예측과 준비, 구성원들의 단합이 있었더라면 많은 대형 사업을 따올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의 대형 대학들 중 어느 대학도 10% 정원감축이라는 조건 때문에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광주의 이웃 대학 호남대는 이 사업에 응모한 6개 사업단이 모두 선정되어 200억 원이 넘는 정부재정지원을 받게 되었다.

2018년 자율개선대학에서 탈락한 조선대는 역량강화대학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대학혁신지원사업 유형II’를 간신히 따냈다. 그러나 또 다시 10%(1주기 감축 4% 포함하면 6%) 입학정원을 감축하면서 약 90억 원의 정부재정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도 이 적자액은 절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V. 대학 민주화 이후의 대학 민주주의

조선대는 1988년 구경영진을 퇴출시켜 국내 다른 대학이 지금도 부러워하는 대학의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 후 30년 동안 민주화의 열매를 독식해온 구성원들, 특히 교수와 직원들은 역동적인 대학사회의 변화를 외면하고 배타적 기득권을 누리며 보수화되었다.

조선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구성원은 역대 총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던 정년계열 교수, 몇몇 직원과 학생 그리고 소수 졸업동문이 전부가 아니다.

조선대에는 현재 정년계열의 교수의 1/3 급여도 받지 못하는 비정년계열 교수(교육중심, 연구중심, 산학협력중심, 강의전담, 외국인 전임교원) 168명이 재직하고 있다(20.8%).

이들과 약간 다른 신분으로 대학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초빙객원교수 94명, 겸임교수 33명, 연구교수 26명, 학술연구교수 4명이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올 8월부터 시행될 ‘강사법’에 따라 교원으로 인정될 비전임교수(시간강사)도 조교(연구, 행정, 특임, 실험, 교육 조교 227명)를 제외하고 355명이나 된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680명(조교 제외)으로 정년계열 교수 639명을 초과한다.

이들은 대학경영의 참정권에서 소외된 약자로서 지금까지 교수평의회 의장이나 총장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살아왔다. 대학 민주화 이후 대학 민주주의의 결과는 약자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력의 결여다.

이들 약자와는 완전히 달리, 조선대에서 특권을 누리는 특정 단과대학의 교수들(의예과 44명, 치의예과 15명을 제외한 의대·치대 임상교수 144명)이 있다.

이들은 대학 본연의 기능인 교육과 연구에 적극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본부대학 등록금 수입에서 동급 본부대 교수들 급여의 약 1.5배의 월급(임상수당, 면허수당)을 받아가지만, 대학병원 진료수입으로 본부대학에 내는 전입금은 그들이 받는 월급 총액의 60%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총장 선거에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다수’의 힘으로 최근 10 여 년 동안 총장직을 독식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자율개선대학 탈락이라는 대재앙이 찾아왔다.

그들은 타 단과대학 교수들과는 달리 학령인구의 급감에 따른 대학구조조정과 학과평가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특권을 누리면서 교평 의장과 총장 선거에 몰입하여 대학권력을 독점해왔다.

고통 받는 자들의 삶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대학경영을 고통을 모르는 보수화된 기득권 세력(다수)에게 선거를 통해 위임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될 불공정한 게임이다.

이는 앞으로 있을 총장선거에서 이들 특권세력에 대한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제한의 핵심적인 논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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