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벌없는사회, 대학 개혁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 촉구

성명서 [전문]

학벌주의 부추기는 한전공대
대학개혁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설립 계획, 막대한 재정 요구되나 재정확보에 난항

학벌주의 아닌 교육·학문 중심 관점으로 추진되어야

계획의 타당성과 충실함 고려하여 전면 재검토 필요


현재 한전에서 설립을 추진 중인 가칭 한전공과대학(이하 한전공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2017년 7월 발표된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도 포함되었다.

캠퍼스 부지를 놓고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경합하여 2019년 1월 28일 전라남도 나주로 부지가 확정되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전공대 설립에만 약 7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며, 운영비로 매년 650억원이 필요할 예정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설립주체인 한전의 적자 등으로 인해 설립주체인 이러한 재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용역보고서 등에서 한전공대의 주요 활성화 방안으로 학비면제, 총장 및 교수진에 대한 고액연봉, 대규모 실험장비 확충 등이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차원에서의 대규모 재정지원이 투입되지 않는 이상 설립을 추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전공대가 들어설 전남 나주 공동혁신도시 남동쪽에 위치한 부영골프장. ⓒ전남도청 제공
한전공대가 들어설 전남 나주 공동혁신도시 남동쪽에 위치한 부영골프장. ⓒ전남도청 제공

6월 27일 열릴 예정이었던 범정부지원위원회 3차 회의 및 기본계획안 발표가 무기한 연기된 것 또한 재정지원에 대해서 지자체 및 정부부처 간 이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의 한전공대 설립 계획은 연구, 교육의 측면이 아닌 고학벌 대학 유치를 통한 일종의 지역개발의 측면으로 다루어진 성격이 크다.

한전공대 설립을 두고 논쟁 중인 정부 및 여당 정치인, 광주전남지역 언론 대 야당 정치인, 보수 일간지 및 경제지 간의 구도 또한 지역개발 재정 확보에 따른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갈등구도에서 정작 대학 설립 계획의 타당성과 충실함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첫째, 계획수립이 관련 관련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닌 용역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은 연구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기관이다.

따라서 대학의 신규설치나 구조개혁 등은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과정은 학계에서 필요성이 제기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지역개발의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어 과연 대학 본연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전공대 계획수립의 관점과 주체 선정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계획을 추진하는 관료나 정치인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껏 한국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왔던 원인도 크다.

한국의 대학은 ‘학위장사’에 매몰되어 취업중심대학이라는 매우 근시안적이고 지속불가능한 대학 운영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한전공대 설립은 기존에 있는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계획이다. 이미 광주과학기술원에 에너지 관련 연구소, 학과가 존재하는 실정에서 이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계획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기존 시설에 투자를 확대해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계획이 추진되는 것은 한전공대 계획 자체가 연구나 학문의 목적보다도 고학벌 대학 유치를 통한 지역개발이라는 학벌주의적 목적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사립대학의 단계적 공영화 및 국공립 대학 통합을 통한 전문화라는 대학개혁의 관점과도 어긋난다. 한전공대 설립과 함께 추진 중인 한전 영재고등학교 설립 또한 명문고-명문대-공기업으로 이어지는 학벌 카르텔을 형성하기 위한 노골적인 시도이다.

세 번째, 막대한 재정투입 이외의 대학 활성화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고액연봉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 급 인력을 총장으로 영입하고, 과학기술원 3배 수준 연봉을 교수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막대한 규모의 연구기금과 장비확충이 대학 활성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계획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재정을 많이 투입하면 높은 선호를 받게 되어 있다.

재정투입과는 별도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최근 광주과학기술원은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으로부터 교수 1인당 논문 피인용수 부문에서 세계 5위라는 평가를 받은바 있다.

기존에 한국대학들이 ‘취업중심대학’과 같은 목표를 내세우느라 대학교육의 질과 연구능력이 크게 저조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고무적인 성과이다.

과학기술원과 같은 대학원 대학 체계가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검토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전공대 설립은 철저히 대학개혁의 관점에 입각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에너지관련 연구 역량 강화와 이를 위한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학벌주의에 입각한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반면에 효율성이 낮고 대학개혁과도 부합하지 않는 현재의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한전 및 관계부처들은 에너지 분야 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효과적인 계획안을 재수립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한전공대 설립 계획은 문재인 정부가 공약했던 대학 구조개혁을 선도적으로 실현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한다. 광주전남 지역 대학의 에너지 분야 학과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광주전남 공동입학, 공동학위로 운영한다면 연구역량이 집중되어 산학협력 또한 용이해질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대학 구조개혁이 추진되었을 때 비로소 대학은 교육과 연구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2019년 7월 3일

학벌없는사회를위한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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