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 외교통상 패러다임(패턴)이 변하고 있다
어떻게 과거 ‘수직적 분업관계’로의 회귀 및 ‘휴먼에러’를 관리할 것인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후 한일관계가 시스템(체제)을 기조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한일 갈등 구조는 조금 거칠게 표현해서 ‘휴먼에러’가 작동하는 경우가 빈번해 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휴먼에러(Human Error)란 인위적이거나 인간이 일으키는 실수를 뜻한다. 물론 이번 무역분쟁의 범인을 찾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프로세스 및 메커니즘을 점검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외교(外交)’란 대외정책(foreign policy) 혹은 대외관계의 처리방법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제도상으로 전개될 경우 예측이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SNS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SNS 갈무리

그렇지만, ‘이데올로기’며 인식(철학) 등 이념적 요소가 우선되고 지나치게 인간의 판단이나 인간적 요소가 강조되다 보면 예상밖의 정책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일 마찰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여기서 논할 의향은 없지만, 가장 최근으로 한정하면 2018년 강제징용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나 초계기 레이다 논쟁 등이 촉발한 한일관계의 대립구도는 결과적으로 일본의 ‘7.1경제제재조치’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지난 6월 29일 ‘보호무역주의’, ‘지구온난화 아젠다 등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가운데 폐막한 이후, 의장국인 일본이 ‘반(反)보호무역주의’에 앞장서는 스탠스와 상반되는 리스크를 던진 것이라 너무도 뼈아픈 외교로 평가된다.

혹여 2019년 오사카 G20정상회의(6.28-29) 이전에 7.1조치가 발동되었다고 한다면 일본의 통상외교가 ‘휴먼에러’라기 보다는 시스템에 의해 작동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기는 분명 의장국 역할을 마치고 ‘6.30 남북미 판문점(DMZ) 회동’을 지켜본 다음날이라는 점이다.

한편, 한일 경제관계의 변화는 크게 다음 4단계로 구별할 수 있다. 우선 한일 양국은 첫째, 전후 체제에서 출발하여, 둘째,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수직적 분업관계(종속적 발전모델)는 셋째, 1990년대에 들어서 수직적 경쟁관계 혹은 협력관계(자생적 발전모델)로 전환되었다. 넷째, 2000년 중반 세계적 금융위기를 전후로 하여 수평적 공생관계(협력적 발전모델)로 발전해 왔다.

굳이 이번 7.1조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경우 한일관계는 ‘수평적 협력구도’에서 다시금 60년대의 ‘수직적 분업구도’로 복귀하는 것으로, 자칫하면 ‘반보호무역주의’와 연동된 블록주의 혹은 지역주의가 만연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섬뜩하다.

한일무역분쟁의 현주소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불거진 한일간 정치·외교적 갈등은 ‘7.1경제보복’이라는 상정외의 재난상황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오는 4일부터 한국에 대한 ‘수출운용관리 정책’을 수정해 반도체와 TV·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의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3개 품목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리지스트’의 수출규제를 시행한다고 밝힘으로써 우려했던 한일관계가 더더욱 뒷걸음질 치는 양상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수출할 때 90일 이내에 반드시 허가를 받도록 한 조치이다. 나는 “정치와 경제 이슈는 서로 분리해서 대응하는 게 맞지만 경제 정책을 맡은 경제산업성까지 나선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그동안 차분했던 일본 관료들까지 감정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라고 평가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파급효과가 큰 조치를 취할지는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일부언론과 인터뷰에서 "양국 정부가 '경제 살리기'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경 분리 원칙을 기반으로 해서 한-일 경제협력 대화 채널을 확대하면 경제 갈등 확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관련 한일 전문가나 관료들의 충고를 그냥 건성으로 들었다. 아마도 한일관계에 관한 다소 낙관적인 입장에서 늘상 ‘화해학을 시작하자’라는 주장(입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던 점을 반성하며 한 두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일본을 묻는다, 왜 폭주하려 하는가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 극복 과정과 맞물려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있던 일본은 경기침체로 인해 반도체 생산기술 주도권을 유지하기가 벅찬 시절을 겪었다.

당시 기술경쟁이 치열한 과정에서 한국의 대응은 그나마 의도적이든 아니든 반도체산업에 있어서 한일간 ‘수평적협력 체제’를 선호했다. 즉, 한국은 대량생산을 통한 글로벌 시장의 정유를 우선하다 보니 반도체 관련 정밀기계분야에서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정책을 선택했다.

그 결과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꼭 필요한 기술에 관해 일본이 세계 시장의 70~90%를 차지할 수 있는 현재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한국이 소재나 장비를 함께 육성함으로써 독자적 기술경쟁력의 확보에 힘썼더라면 대일 산업경쟁력 확보는 물론 선제적 대응(관리)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주장을 살펴보자. 김규판 대외경제연구원(KIEP) 선진경제실장은 “2000년대 중국의 부상, 한국의 빠른 성장은 잃어버린 20년에 빠져 있던 일본으로서는 경제적으로도 굉장한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며 “한일간 경제력 격차가 컸던 1970~1980년대라면 일본이 지금과 같은 대응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경향비즈 2019년 7월 3일 자)한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미국과 일본이 무역마찰 과정에서 활용했던 1960년대 말부터 1990년 중반까지 관리무역 형태의 하나인 교역상대국에 대해 특정 품목의 수출과 수출 물량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자율수출규제(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나 ‘수입자율확대(VIE: Voluntary Import Expansion’ 등의 수단보다도 한층 강화된 보호무역주의를 시도하는 것은 시대착오(時代錯誤)적 통상외교이다,

한일관계 격랑으로 빠져들 ‘역주행’을 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한일협력위원회 특강(2019.7.2)에서 무엇보다도 더 이상 한일관계가 역주행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한일 양국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서 ‘위기관리’ 및 ‘화해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아울러 현장에 답이 있다는 ‘현장학’의 교훈을 살려야 하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입장바꿔 생각하는 ‘타자(他者)인식’이나 거꾸로(flipped) 보는 시각, 즉 ‘역(逆)이미지론’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전후 한일 외교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실패의 교훈을 살려야 한다.

즉 실패학에 관심을 갖고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그 프로세스 및 메커니즘에 위기관리학 및 화해학, 현장학 및 ‘역(逆)이미지론’을 효율적으로 어우르면 좋겠다.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등 보복적인 행위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추상적 제언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역주행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한일 외교 및 인적 교류 등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한일 화해로 가기 위해 기초체력을 다시 점검하자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한일 외교에 적용해 보자면 더이상 한일 갈등 요소를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관리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위에서 지적한 ‘휴먼에러(인적요인)’에 의한 외교통상적 대립이 빈발하고 있는 만큼 상대국가에 관한 인식이나 의식을 바꾸는 게 ‘용기있는 첫걸음’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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