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묘지에 누워있는 5월 영령들의 눈은 아직 감기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을 학살했던 신군부세력과 하수인들이 반성의 기미도 없이 기름진 얼굴로 여전히 80년 5월을 모독하고 있다.

5월 영령들은 결코 편히 잠들 수 없다. 5월 영령들의 피가 채 마르지 않은 구전남도청 일대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전당)이 들어선 지 3년이 넘었다.

성과를 판단하기에 시기상조임을 잘 안다. 하지만 외지인이나 외국인은 차치하더라도 광주사람들조차 전당이 어떤 곳인지 즉 전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실정이다.

‘실험적 문화발전소’와 ‘대중 친화적 문화향유 공간’ 사이에서 전당은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해왔다. 전당은 정체성 구축과 더불어 개관 후 지금까지 드러난 한계점(창·제작 선순환 시스템 정착 미흡, 공간별 운영 활성화 격차 확대, 재정적 자립 기반 요구 강화)을 극복하기 위해 2019년에 5대 추진과제를 내놓았다. ‘① 킬러콘텐츠 개발 ② 융합콘텐츠 창·제작 ③ 아시아·지역 소재 공연 시연 ④ 창·제작 기반 강화 ⑤ 창·제작 콘텐츠 확산’이 그것이다.

지난 5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당의 ‘예술극장 극장1’에서 펼쳐진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전당이 작정하고 만든 공연이었다.

전당이 직접 공연의 창작과 제작에 참여했고, 전당이 보유한 무대기술을 십분 활용했으며, 5월 영령들이 산화한 곳에서 ‘최초’로 5·18민중항쟁의 열흘간의 이야기를 재현했다. 그동안 전당에서 5·18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한, 광주의 5월을 고려해 기획했을 법한, 하지만 맥락 없이 끼워 넣은 듯한 클래식 공연으로 인해 필자는 설득당하지 못한 전당의 ‘2019 MAY PEACE FESTIVAL’ 행사로 인한 ‘5월의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점에서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박수받을만 하다.

예술적 재현의 핵심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게 하기’에 있다. 구전남도청 광장에 탱크나 헬리콥터(직관적 매체)를 전시하는 것은 기억을 재단하고, 특정한 기억을 강요하는 박물관식 재현이다.

하지만 예술적 재현은 직관적 매체가 아닌 은유의 방식으로 표현된 매체를 통해 탱크와 헬리콥터를 상상하게 하고 5·18민중항쟁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예술적 재현은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건에서도 다양한 기억과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사건은 해석이 필요한 일이다. 사건의 해석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뤄질수록 입체감을 갖는다. 역사적 진실 규명을 위해서라도 예술적 재현은 필요하다. 하지만 광주의 역사적 사건의 재현 실정은 박물관식 재현에 머무는 수준이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직관적 매체다. 배우들의 복장과 대사, 5·18민중항쟁의 핵심지였던 광주역과 금남로 그리고 구도청을 재현한 무대, 5·18민중항쟁 때 배포됐던 투사회보의 재현과 활용 등 직관적 매체로 채워진 연극이다.

하지만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박물관식 재현이 아닌 예술적 재현이라 말할 수 있겠다. 1980년 5월의 시위현장을 재현한 무대에 관객을 참여시켜 함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금남로와 광주역을 행진하고, 1980년 5월 당시 상무관에 놓였던 5월 영령들에게 추모의 촛불을 건네게 했다.

관객들은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으로 거듭났다. 당시 광주에 없었던 수많은 ‘나’들이 ‘1980년 5월의 조각’이 되었다.

젊은 관객을 잡기 위해 실험적인 형식이 아닌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 관객 참여형 공연)를 택한 정인석 프로듀서. 고선웅 연출가, 김경주 시인, 안준원 소설가가 함께 쓴 극본.

39년 전의 사건이지만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밝지만 깊이 있는 조명과 런웨이를 연상케 하는 무대 설치와 장엄하면서도 절제된 음악으로 세련된(시대에 적합한) 무대를 만든 남경식 무대디자이너 등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관객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지만 어느 곳에서보다 생생한 5·18민중항쟁을 경험할 수 있었다.

90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5·18민중항쟁의 10일간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시연이었던 만큼 배우 한 명 한 명이 상징하는 광주 시민에 대한 좀 더 디테일한 접근과 표현은 제작진에게 과제로 남기고 싶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만족한 공연이었으나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5월 영령 개개인의 삶을 세심하게 어루만지고 집단 기억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5·18민중항쟁에 개인들의 기억을 새겨넣는 작업을 요청하는 바이다.

또한,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정체성 구축과 킬러 콘텐츠의 부재 그리고 창·제작 시스템의 선순환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전당 측에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당 측의 노고도 함께 살피며 선전을 기원한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5호(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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