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선(線)과 여여(如如)하다
[범현이의 작가탐방] 선(線)과 여여(如如)하다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19.05.3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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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을 찾아가는 선(線)의 서예작가 박 영 도

작가를 처음 본 것은 10년 전이었다. 시간을 에둘러 결국 다시 만났다. 날 서 있던 눈빛은 편안하게 부드러웠고 직선으로 내리꽂던 말도 분홍빛을 띠었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지나온 산이 높았고 건너온 강물이 깊었으리라. 모든 것이 지나가고 겪어야할 것들을 겪은 후에 내뿜는 체화의 냄새가 느껴졌다.

이사도 했다. 15년 이상을 사용하던 서실 겸 작업실을 두고 서실과 작업실을 분리한 곳에 정착한 지 벌써 3년 차가 되었다. 직접 경영할 ‘구슬나무 미술관’도 곧 완성이 될 것이다.

작가를 만나러 계단을 오르면서 10년 후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 작가의 얼굴에서 지나간 시간이 빠르게 스쳐갔다.

단순하게 단아하게 단단하게

박영도 서예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박영도 서예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제대로 걷는 여행은 혼자여야 한다. 서예를 등에 맨 삶의 여행은 혼자였다. 앞만 보고 걸어왔다.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친구이자 목숨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먹이란 유전자가 온 몸 안에서 꿈틀거렸다. 먹고 자고 먹과 종이가 전부였다. 숨차게 걷다 문득 스스로의 행보에 질문이 생겼다.

혼자서 걷는 것이 맞는가, 이만큼이면 여행에 대한 답이 들려와야 하지 않는가. 예비된 답은 처음부터 작가가 원하는 결론이 아니었다.

작가는 “서예를 하면서 어느 순간에 문자가 숨이 막혔다. 문자의 무게에 눌려 다른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예(書藝)는 문자이면서 예술이다. 문자는 인간이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누구나 쓰며 즐길 수 있는 예술인 셈이다. 맞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본체를 가지고 문자를 표현하고 더불어 기록도 한다. 서예는 여기서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식간에 자판을 두들겨 글자꼴을 선택해 문서를 작성하고 복사에 출력까지 마치는 현대인들에게는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문자를 넘어선 서예에는 그것을 써내려간 작가의 정신과 의도한 생각이 존재한다. 작가는 서예라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입력한다. 그것이 서예다.

작가는 “스스로의 질문이 생겼을 때 할 수 있었던 일은 실천과정의 연속이었다. 문자의 변형에서부터 내가 붓을 들고 선을 찾아 화선지에 먹을 대는 순간까지 내 삶은 서예이며 삶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한 획이 선으로 오고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며 “비록 제자리걸음을 걸을 지라도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고 지나온 시간을 설명했다.

심상_ 삶의 무늬

박영도-무위자연.  70×80cm.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박영도-무위자연. 70×80cm.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글그림 같았다. 분명 문자이면서 문자 이상의 예술의 깊이가 담겨있었다. 선(禪)이 느껴졌다. 통으로 숨을 고르고 단번에 꺾어 내려간 한 획에서 먹이 갖는 단단함을 넘어 작가의 올곧은 단단함도 보였다.

작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척했다. 텅 비어있으나 꽉 차 있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검은 빛의 먹이 주는 느낌이 화선지 안에서 강하게 빛나면서 공명처럼 빛나는 하얀 여백이 주는 느낌은 반대로 검은 먹빛을 사로잡고 있다.

작가는 무위자연에 대해 “선(線·禪)에 대한 심상(心想)을 형상화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모두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몸, 어디에도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모두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먹과 붓을 도구로 그 마음이 표현하는 무늬에 대해 자신만의 표현양식을 빌어 ‘무위자연’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란 형상은 작가에게 와서 단순하고 단아해졌다.

작가는 “굳이 문자가 아니어도 서예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문으로 길게 써져서 문자 해독이 어려워도 먹이 주는 깊고 단순한 선들이 구상과 추상이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내가 굳이 문자가 아닌 그 자체로 심상을 표현하는 것은 결국은 무위자연으로 우리 모두는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심상의 무늬들은 2020년 독일에서 전시를 갖는다. 하나의 선이 주는 의미와 단순한 선이 주는 맛과 멋의 깊이.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선의 결정체가 초대전을 있게 했다. 미리 축하의 말을 전한다.

작가의 마지막 말이 귀에 생생하다. 귀일(歸一).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5호(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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