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 하는 '오월시 연재'

천사들의 침묵

- 이재연
 

말 한마디 없이

아버지는 오래전에 죽었다

죽어라고 독재를 반대하던 사람도 죽었다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 우리엘의 눈동자여

그대들이 본 것을 말해주시오

이제 아무도 바람과 싸우지 않는다

광장에도 맑은 오후에도

사람들이 말하기를 쉬운 일은 없다

하늘은 물론이고 우리의 꿈조차도

그들의 손아귀에 있다 순간도 자연도

무한한 침묵도 그들의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쭉쭉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두 손을 공처럼 둥그렇게 모으는 습관이 있다

공손한 두 손은 이 도시의 패자에게 남은 모든 것이다

진짜 큰 도적들은 밀실에서 돈을 세고

있는 자는 태연하게 감옥에서 나오는

추억은 매우 나빴다 죽은 자와

담배를 나누어 피우는 장례식장에는

알맞은 침묵, 알맞은 기억이 있다

죽은 자의 이름을 자꾸 떠올린다

연기와 재만 남는다

 

**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2년 오장환 신인문학상 수상, 시집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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