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전문]

학벌주의 직업교육이 대학의 본분인가?

- 유명 종합대학 중심 취업조건형 계약학과 설립에 반대한다! -

- 연세대, 고려대 취업조건형 계약학과로 반도체학과 설립 추진

- 대학체질을 개선하기는커녕 대학 독립성 훼손하고 기업종속 심화시킬 우려

- 폴리텍대학 및 과학기술원 등 활용하지 않고, 학벌주의에 근간을 둔 대책

- 대학 기본 역량을 강화하고 공정한 인력을 기를 수 있는 대책 세워야.



지난 4월, 졸업하자마자 삼성전자 입사를 보장하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연세대에서 2021학년도부터 운영한다는 계획이 보도되었다.

고려대에서도 SK하이닉스 입사를 보장하는 계약학과 설치를 추진 중인 모양이다. 이 같은 계획은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열세인 한국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 대책의 일환이다.

그런데, 반도체 관련 전문인력 양성을 명분으로 종합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를 확대하는 것은 대학이 기업에 종속되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며, 대학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은 배움이 가장 새롭게, 또한 왕성하게 일어나야 할 곳이며, 다양한 학문을 자유롭게 연구하고, 삶의 진리를 탐구하며,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타락하기 쉬운 사회를 멈추어 세우고, 바람직한 사회를 위한 담론을 설정하는 곳이다. 미래 산업을 이끌어가는 힘도 여기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젊은이가 취업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학의 목적이 취업으로 변질되면서 ‘취업률이 얼마나 높은지’가 학과 선택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 취업실패 = 인생실패 △ 대학생활 = 취업준비 △ 인문학과 = 취업 경쟁력 없는 학과 = 폐지 △ 취업률 낮은 학과 = 통폐합 등 지극히 세속적 기준 아래 대학이 본질적 기능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으며, 대기업에 비판적인 인사의 학내 강연 마저 불허되는 등 대학이 사회 기득권의 눈치를 보는 폐단이 심각해 지고 있다.

대학이 대기업의 연수기관이나 인력 양성소로 타락하는 상황에서 눈앞의 이익만 좇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불투명해할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그런데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해결 방향을 절박하게 고민하기보다 그간 학벌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소위 입시 명문대학에 아예 계약학과를 설치하는 일을 기업과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사고하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시스템 반도체 관련 한국기업의 부진은 이미 90년대 말부터 지적되어 왔으며, 현재 겪고 있는 위기는 오히려 단기적 취업대책에만 매몰되느라 대학의 기본 역량 강화와 사회적 책임에 무관심했던 영양결핍이 꾸준히 누적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학은 미래 기술을 선도적으로 연구하기보다 당장 취업률 높은 학과가 대학의 성과 인양 자랑하는 데 안주했다.

진리 탐구에 충실한 대학의 기본 역량 안에서 핵심 인력을 더 이상 배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온 정부 대책이 소위 명문대에 계약학과를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언뜻 정부와 대학, 기업이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정책은 대학 스스로 기본 역량을 갖출 기반을 형성하는 근본 대책이 아니라, 취업에 뿌리를 둔 단기 대책에 학벌주의로 반짝 광을 낸 속임수에 불과하다.

더구나 원래 기술 분야 관련 연구를 잘하라는 정책 취지로 설립된 폴리텍대학이나 과학기술원은 제쳐 두고 소위 명문대에 이와 같은 학과를 설치하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서글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학벌주의를 철폐하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서 학벌주의에 새로운 산소통을 공급해 줄 위험마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도체 인력간 학문 경쟁이 아니라, 취업이 보장되는 인력이 되기 위한 입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기술 혁신의 방향과도 거리가 멀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촉구하는 바이다.

△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소위 명문대학에 특혜를 주는 반도체 계약학과 설립 계획을 취소하라!

△ 반도체학과와 산업기술에 특화된 기존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공정한 인재 육성 계획을 수립, 추진하라!

2019년 5월 20일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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