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오월시 연재'

사상의 술잔

- 박종화
 

사상의 술잔은 위험하다

결의를 하면 안중근의 단지가 되고

취하면 뒷골목 패거리가 된다

남이 하는 멋진 사상의 건배 흉내 내다 보면 안 맞는 옷을 걸친 것처럼

술잔은 이내 초라해 지고 분위기는 썰렁해진다

사상은 나답게 주인답게 만인의 보편적 가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결코 사상을 흉내 내지 마라 사상의 노예가 되지 마라

사상은 그 핵인 사람 안에 있고 사람이 사는 현장에 있다

땅속에도 물속에도 창고에도 스위스 비밀 은행에도 지구별 그 어디를 가도 현장 외엔 없다

수없이 많은 서로 다른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바다 같은 현장에서 사상 또한 유영해야 한다

생각 견해 입장 노선 진로가 다른 온 갖가지 사람이 노니는 영상의 바다에서

사상은 그저 유영해야 한다

사상의 술잔은 늘 위험하다

총을 들면 피를 먹는 혁명이 되고

취하면 형제마저 가르는 철천지원수가 된다



** 시인, 싱어송라이터, 서예가, 시집 <바쳐야한다> <서글픈 고정관념> <지금도 만나고 있다>, 산문집 <나의사랑 나의노래> <사색과 함께 노래와 함께> <나의 삶은 커라> <서예와 함께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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