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오월시 연재'

파옥(破獄)

- 최병해

독사의 냉기가 스물거리는 감옥에서 수인囚人은 끌려와 방에 버려졌다 암술을 호위하듯 동료 수술이 둘러앉는다 겨우내 고문이 쩌릿쩌릿 통하던 뼈마디에 거머리처럼 꽃샘추위 들러붙지만, 밤 지새워 수런거리는 목소리는 탱탱하게 물이 오른다 내일인가 모래인가 거사를 앞둔 밤이 동동주처럼 익는다 발효는 상처를 향기로 빚어가는 일, 이 밤 모의의 기억은 무성영화처럼 닳아지리라 어쩌면 이 길의 끝에선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한 번 더 곤봉이 정수리를 후려치면 의지를 벗은 육신이 영영 바닥과 하나가 될지 모른다 그 순간에도 깃발이여 그대는 등판을 밟고 가라 꽃받침은 세상으로 매운 불꽃 하나 피워 올릴지니. 누가 이 거리를 야수의 뒷골목으로 만들었는지, 함부로 겨울을 휘둘러 피를 뿜게 했는지 봄의 DNA는 오래오래 전하리라 터뜨린 불꽃 합창이 되어 거리마다 등성이마다 메아리칠 때, 활짝 옥문을 열어젖히고 나온 암술과 수술, 개화는 눈부시다 소망 한 알 남긴 채 햇살 아래 뚝 떨구었지만, 그날 이후 맞는 여름은 늘 빚쟁이였다


**경북 경주 출생, 1992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울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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