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국민을 화나게 하지 말라

독일의 시인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1892~1973)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60여 년 전인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다. 인간의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숨은 작은 아픔들을 담아 낸 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가 그려낸 인간의 아픔들이 어디 그뿐이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아픈 모습들이 많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슬퍼한다. 슬퍼하는 마음은 순수하다. 그 마음 꼭 간직하기를 바란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고난을 걷지 않은 민족이 없을 것이다. 세계 최대강국이라는 미국도 들여다보면 고난의 역사가 있다. 남북전쟁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었고 지금도 미국의 인종 문제는 많은 사람을 슬프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이 어디 우리만이야 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역사는 고난이란 슬픔으로는 단연 으뜸이다. 또 슬퍼진다.

하루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슬픈 소식이 있는가. 누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아무 문제도 없는 날이 오히려 불안한 우리의 일상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패스트트랙

2019년 4월 23일. 며칠 전이다. 역사는 또 이날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언론은 ‘여야 4당 패스트트랙 추인’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이 추인되면서 20대 국회는 선거제 개혁과 검찰개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 박근혜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일 때 제정한 국회선진화법 덕이다.

한국당은 슬픈 날이 됐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나경원 원내대표야 원래 좀 그렇지만 황교안 대표의 경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이럴 때 쓰는 막말이 ‘정신 줄 놓았다’고 하는 것인가. 황교안·나경원이 의원들과 팔짱 끼고 어깨동무하고 광화문을 누비다가 청와대로 향했다. 산책이 아니다.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라면 하고 천막을 치라면 친다”

황교안의 말이다. 누가 농성을 하라든가. 누가 천막을 치라고 하던가. 국민이 요구했는가. 밝혀 주기 바란다. 공안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맘껏 휘두르던 황교안도 거리의 정치는 서투르다. 유치원생이다. 누가 코치하는가.

국회의원들의 시위와 농성은 국민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새로 당대표가 된 황교안의 시위는 영 어색하다. 참혹하다. 거리 투쟁이 최고라고 누가 조언했는지 영 잘못 가르쳤다.

공부 많이 한 황교안이 아닌가. 황교안은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제대로 배워야 한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낙제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가 아니라 인생에서 낙제다.

■동물 국회

며칠 사이에 온갖 못 볼 것 다 봤다. 돈 주고도 못 볼 것이다. 국회의장이 의장실에 갇혔다. 채이배 의원도 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6시간을 갇혔다. 내 보내 달라며 절하고 애걸했다.

경호권이 발동된 후에야 석방됐다. 채 의원이 범죄자인가. 난데없는 성추행도 등장한다. 한국당의 이채익이라는 의원이 같은 당 임이자 의원을 두고 차마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 들어보자.

‘키 작고 못난 올드 미스 임이자 같은 사람은 모멸감을 주고 수치심을 극대화하고 성추행을 해도 되느냐?’

임이자 의원은 오히려 이채익의 발언에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이채익의 수준은 그것밖에 안 되느냐. 그 정도의 양식도 없느냐. 어느 지역구냐. 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실 3개를 점거했다. 회의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럼 국회의원은 왜 하는 것인가. 의정활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 지금 한국당이 하는 짓거리를 국민이 멀쩡하게 눈 뜨고 보고 있다. 국민의 머릿속에는 판단이 서 있을 것이다. 한국당은 더 이상 국회를 동물 사육장으로 만들지 말라. 동물이 되고 싶은가.

■한국당의 변화는 불가능한가

한국당이 발칵 뒤집혔다. 새 당대표 황교안의 지시로 당직사퇴서를 제출한 고위당직자들은 기가 막혔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가. 새로 당직을 임명했는데 그들은 한국당과는 동떨어진 인물들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이라면 우선 반대부터 했는데 이젠 신중하게 검토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협조한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도 깜짝 놀랐다. 문재인이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말도 싹 사라졌다. 아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 수도 있구나.

어떤가. 이렇게 쓰다 보니까 나도 이상해진다. 그러나 이상해질 것도 없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깊이 생각해 보라.

황교안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가. 아마 오늘의 한국당을 가장 탄식할 사람이 황교안일지도 모른다. 정치는 생물이라 했고 생물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황교안이 변하고 한국당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면 국민들은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 황교안이 앞장설 수 있다. 황교안은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은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마산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이다. 일컬어 ‘부마 민주항쟁이’라고 한다.

박정희 유신독재는 부마항쟁 앞에서 전전긍긍했다. 계엄령을 선포했다. 최근 밝혀진 것이지만 당시 보안부대장인 전두환이 깊이 관여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당시 박정희를 수행한 것은 경호실장 차지철이다. 박정희는 다시 시위가 일어나면 자신이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차지철이 말을 받았다.

‘캄보디아에서는 200만 300만을 죽여도 끄떡없습니다.’

이 말은 누가 꾸며댄 말이라고 믿자. 그러나 제주 4·3의 학살. 5·18 광주의 살육을 자행한 잔인성이 캄보디아의 학살만 못 했을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그러나 그런 참혹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정희도 차지철도 죽었기 때문이다. 그뿐이었다. 전두환이 나타났고 광주의 학살도 자행됐다.

무슨 낯으로 지지를 부탁하는가

동물 국회의 모습을 모든 국민이 생생하게 목격했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만 국민의 요구는 들어야 한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그들이 만든 법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시켜야 한다. 지금 국회는 자신들이 만든 법을 어기고 있다. 어긴다기보다는 유린하고 있다.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알려준다. 잘 들어라.

2013년 8월 신설된 국회법 제15장 ‘국회 회의 방해 금지’ 조항엔 회의방해죄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엄단하도록 규정했다.

2013년 8월 신설된 국회법 제15장 ‘국회 회의 방해 금지’ 조항엔 회의방해죄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엄단하도록 규정했다.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저지른 동물적 행태는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가장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국회법 무시와 국회무력화 시도로 기록될 것이다. 이를 국민이 그냥 묵과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한국당의 행태 중에 가관인 것이 여러 가지지만 대표적인 것들을 꼽으라면 박근혜 형 집행정치를 요구하며 내민 아우슈비츠 운운이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한국당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았을 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국민의 인내력을 얼마나 시험하려고 하는가.

이제 국민을 슬프게 하는 단계는 벗어난 것 같다. 다음은 무엇인가. 그들 자신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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