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뒷모습에서 구원을 찾는 작가 김정하
[범현이의 작가탐방] 뒷모습에서 구원을 찾는 작가 김정하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19.04.0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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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기억하지 않겠다

벚꽃이 피고 있었다. 겨우 몇 시간을 달려간 곳인데 그곳엔 봄이 허리만큼 다가와 있었다. 멀리 보이는 바다. 가까이서 활짝 피어가는 벚꽃들. 작가를 만나러 가는 시간은 만개한 봄의 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계단을 오르자 익숙한 냄새가 있었다. 테레빈 냄새. 작업실은 넓고 쾌적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쨍한 햇빛에서 잘 마른 이불이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작가는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일 년째 거주 중이라고 했다. 벽에 걸린 작품들은 대부분이 선명하게 채도가 높다. 붉고 푸르게 일렁인다. 그리고 깊게 가라앉는다.

뒷모습의 얼굴들

김정하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김정하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모두가 뒷모습이다. 언뜻 모로 돌려진 뒷모습에서 앙증맞게 귀가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뒷모습이다. 어른 여자 아이들 할머니 등의 모두가 뒷모습이다. 얼굴을 보이고 있는 사람살이 냄새는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으로 보인다.

얼굴 없는 뒷모습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이다. 얼굴의 숫자만큼 뒷모습의 다른 목덜미의 숫자를 가진다. 모두가 다르면서 ‘목덜미’라는 뒷모습으로 정체성을 가진다. 우리가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뒷모습만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능력은 뒷모습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머리끝에 작은 태슬과 꽃, 기타의 장치를 오브제로 사용했다. 간결함이 도드라지면서 바탕의 채도가 작품의 깊이를 조용하게 숙고하게 해준다. 작가만이 할 수 있는 표현방법의 장치일 것이다.

2011년부터 뒷모습의 표정에 주목해 왔다. 작가는 “얼굴은 내가 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내가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눈떴다. 당연한 사실임에도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고 고백했다.

늦은 나이에 전공을 하고 화구를 갖춰 무엇을 그릴 것인가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작가는 “결국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그리자.”는 결론을 도출해냈고 사람들의 뒷모습에 마음을 두기로 했다.

맞다. 아침이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는 시간. 내내 우리는 얼굴을 들여다 본다. 목과 뒷모습은 앞을 있게 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뒷모습이 있어서 앞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길게 슬픔의 무더기에 천착해 목울음을 참아낼 때 어깨와 뒷모습이 떨려오는 진동처럼.

삶이란 무늬

모두가 표정이 있다. 어린아이의 목덜미에서 파닥거리는 싱싱한 생명력은 반대로 할머니의 목덜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삶을 관통한 무엇인가가 짓누르고 있는 느낌과 무늬의 공통점은 모두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김정하- Conceal.  50×50cm  Oil on canvas  2018-2.
김정하- Conceal. 50×50cm Oil on canvas 2018-2.

같은 여자이면서 모두 다른 표정의 뒷모습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은 슬프고 애잔해 보이고 누군가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뒷모습을 기억하지 않는다. 모두가 뒷모습 표정의 단호함과 분명함 속에서 느껴지는 찰라의 순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사람과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관심을 가지고 대상을 지켜보고 무엇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형상화 작업에 임했다.”고 설명한다.

사회적 관계성에서도 작가의 뒷모습은 빛을 발한다. 뒷모습을 통해 발현된 고유한 정체성과 목덜미의 선으로 충분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모든 뒷모습들이 ‘나. 여기 있어.’ 하고 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

옆으로 길게 모로 누운 여자가 있다. 물론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뒷모습에서 여자의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슬픔도 언뜻 보인다. 무엇인가의 고통에 억눌려 무너져버린 자신을 다잡으려는 의지도 보인다. 세상의 모든 뒷모습에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표정이 삶의 무늬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뒷모습을 모른다. 기억하지도 않는다. 조각으로 이어지는 삶의 단편적 편린 속에서 가끔, 언뜻 생각해낼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뒷모습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 진실함. 앞모습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은 내면과 삶의 무늬.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3호(2019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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