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박동환 선생 별세
통일운동가 박동환 선생 별세
  • 이상현 기자
  • 승인 2019.04.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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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출신으로 평생 통일운동에 헌신한 '실천가'
지난 2일 향년 91세로 사망... 4일 영락공원에 안장

전남 담양 출신으로 평생 통일운동에 헌신해온 박동환(朴東煥)선생이 지난 2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각종 집회에 모습을 보였던 고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한 통일운동 동지들과 선후배들이 깊은 애도를 보이고 있다.

고인은 생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유족회 광주전남 고문, 6.15공동위원회 광주본부 고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중앙위원 등을 맡아 통일운동에 앞장서 왔다.  

고 박동환 통일운동가가 생전 동지들과 지인들이 마련한 미수연에서 건배하고 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광주전남연합 제공
고 박동환 통일운동가가 생전 동지들과 지인들이 마련한 미수연에서 건배하고 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광주전남연합 제공

1929년 9월 4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동운리 동산촌에서 출생한 고인은 1930년 1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동경 향도구(向島句) 고등소학교(현 초등학교)을 졸업한 후 일본국민총동원령에 의한 비행기 운반차 제조 공장에서 1년 동안 소년노동자 생활을 겪었다.

1945년 12년 귀국 후 담양 잠시 동산촌에 머물다 1946년 6월 종연방직회사(현 전남방직) 입사한 후 1957년 평북출신 동료 노동자 김명숙씨와 결혼했다. 고인의 부인은 지난 1984년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고인은 1961년 4.19 투쟁에서 전남방직 노동자 3000여명을 이끌고 전남대, 조선대학생들과 연대 투쟁을 주도했다. 이후 전남방직 노조위원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이끌다가 5.16군사쿠데타 이후 해직에 이어 검거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석방된 후 1962년부터 1986년까지 방직기계 특허 연구, 여관운영, 동서증권 근무,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어 고인은 1989~1995년 (60~66세) 전남 화순 너릿재에서 양봉사업을 하기도 했다.

고인은 1995년 일본 동경에서 해외 범민련 박용 사무총장을 만났다는 것을 이유로 1997년(68세)에 안기부 광주지부에 체포돼 국가보안법상 잠입 ․ 탈출죄로 7년 구형에 3년 징역, 집행유예 4년으로 4개월 옥고 치르고 석방됐다. 당시 고인은 형언할 수 없는 구타와 물고문 등의 고초를 겪었다.

석방된 후 고인은 광주에 거주하면서 범민련 중앙위원, 민족자주통일중앙회의 광주의장(2015년), (사)사월혁명회 회원,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유족회 광주전남 고문, 6.15공동위원회 광주본부 고문 등을 맡아 통일운동에 앞장서왔다.

특히 고인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모든 시위 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통일운동가로 젊은 활동가들에게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왔다.

고인의 분향소는 광주시 광산구 신가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됐으며 4일 오전 10시 발인하여 광주 영락공원에 안장된다. 유족으로는 아들 춘식, 일식 용식씨가 있다. (062)528~5632, 신가병원 장례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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